동아시아문화도시 니가타의 아침

2015.03.05 13:59:08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바람이 차지만 햇살은 엄연하다. 봄소식을 전하기 위해 매화가 북풍한설을 뚫고 달려와 붉은 미소를 띠고 있다.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고,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제 곡조를 간직한다고 했던가. 찬바람에도 다소곳이 피어나는 매화 앞에서 서성거린다. 그래도 내게 향기 하나쯤 건네지 않을까 설렘 때문이다. 니가타가 자랑하는 쌀로 아침을 먹는다. 입 안에서 단 내가 난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향과 아름다운 물결이 감돈다.

지금 나는 니가타에서 동아시아문화도시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니가타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수많은 문화예술의 기적이 만들어질 것이니 이 순간의 소중함이야 말해 무엇하랴. 세 나라, 세 도시가 문화로 하나되고 예술로 감동을 나누며 커뮤니티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여는 가슴 떨리는 시간 아니던가.

니가타는 바다와 강의 도시, 쌀과 화훼의 도시, 대지예술제와 마쯔리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 주도형 축제가 펼쳐지는 도시다. 1968년 일본에 첫 노벨상을 안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소설은 '국경의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진 듯했다'로 시작하는데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작 중 가장 아름다운 첫 문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어령이 말하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처럼 가장 짧은 문장에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니가타 개막식에 앞서 방문한 사케제조장. 이곳은 100년 넘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고 술익는 냄새로 가득하다. 옛 건물 그대로, 전통의 기법과 장인의 정신 그대로, 그리고 현대적인 디자인이 접목돼 일본 최고의 술을 만든다는데 니가타현에는 92개의 사케제조장이 있고, 매년 술을 테마로 한 축제까지 열린다. 니가타 제일의 부농이었던 이토가문의 저택이 관광지로 변신한 북방박물관. 5만여 평의 대지에 수백 년을 이어온 농경문화와 정원문화가 그대로 살아있고 달달한 쌀밥으로 나그네를 시심에 젖게 하는 곳인데 연간 20만 명이 방문한다.

이처럼 니가타는 도시 전체가 다양한 스토리와 콘텐츠로 가득하다. 발 닿는 곳마다 기능성과 실용성, 그리고 심미성을 담고 있다. 이것들은 다시 춤과 노래와 음식과 축제로 발전시키고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 같은 열정은 개막행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시민 2천여 명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는데 남녀노소 구분 없다. 무대에서도 전통음악과 현대무용, 그리고 각양각색의 시민 공연단이 신명나는 퍼모먼스를 펼친다. 춤을 추며 '니가타'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니가타'를 외친다. 객석과 무대가 하나되는 풍경에서 니가타의 시민정신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칭다오에서도 춤과 음악과 기예단의 공연이 펼쳐지고, 청주에서는 시립무용단의 멋진 춤사위와 놀이마당 울림의 신명나는 사물놀이가 이어졌다. 세 도시가 문화로 하나되고 예술로 꽃피우는 무대였지만 수많은 관객들을 감동시킨 것은 단연 청주팀의 공연이었다. 무대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고 감동의 드라마였으며 흥겨운 축제의 마당이었다. TV 생중계를 보고 달려온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 그 감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

학술심포지엄에서 기조발제를 한 일본의 문화전문가 오시타 요시유키는 "세 나라가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끝없는 갈등과 대립이 지속돼 왔는데 동아시아문화도시는 이를 문화예술로 하나되게 하고 있으니 노벨평화상에 버금가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동아시아문화도시의 소중한 뜻을 꽃피우고 열매맺게 하는 일에 매진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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