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다시 불꽃의 시간을 위해

2015.08.20 13:12:52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이 땅에 태어나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온 몸을 바쳐 살다 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개인의 영광과 이익을 뒤로하고 공공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고심참담(苦心慘憺)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새삼 광복 70주년을 맞아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고향과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깊은 생각에 젖는다. 문화기획자로, 칼럼니스트로, 교육자로 생생한 삶의 최전선에서 창조의 샘물을 길어 올리고, 열정을 다해 살아왔지만 나만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앞선다. 내가 한 일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 그 결과가 가져다 줄 사회적 평판에 대한 부끄러움, 새 날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더욱 힘들고 고독하게 한다.

이 같은 생각은 KBS가 기획한 2부작 '이상설 불꽃의 시간'을 보면서 더욱 깊어졌다. 구한말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한국 독립운동사의 거인이자 민족교육자, 근대 수학교육의 선구자인 보재 이상설의 일대기 앞에서 가슴이 먹먹했다. 조국의 독립과 근대 학문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온 생애를 바쳐 왔는데, 나는 사사로운 일에도 상처받고 쉽게 좌절하지 않았는지 번뇌에 가득찼다.

방송 프로그램의 치밀한 기획과 혁신적인 편집이 내 가슴을 더욱 뜨겁게 했는지도 모른다. 중국, 러시아, 네덜란드 등 이상설의 독립운동 발자취와 고난의 여정을 모놀로그 드라마로, 삽화와 샌드 애니메이션으로, 감각적인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헤이그 특사로만 알고 있던 이상설이 독립운동사의 가려진 전략가이자 불운한 시대의 천재였음을, 광무황제의 외교특사였지만 순종의 첫 번째 사형수가 됐고, 조선의 마지막 과거에 장원급제한 유학자이면서 법학, 정치, 수학, 과학 등 근대학문의 선구자였음을 알게 됐다.

어쩌면 KBS의 '이상설 불꽃의 시간'은 내가 그동안 지켜 본 지역 방송의 다큐멘터리 중 최고의 역작이 아닐까. 하여, 이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고 뮤지컬로 특화하면 좋겠다. 창조적인 구국청년을 키우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를 만들면 좋겠다. 정부와 지자체와 언론이 앞장서야 할 것이며, 지역주민이 힘을 보태야 한다. 의로운 일에는 머뭇거림이 있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우리지역에는 수많은 애국자가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항일운동가로, 사학자로, 문학가, 언론인으로, 교육자로 평생을 살다가 여순감옥에서 56세의 일기로 순국했다. 의암 손병희는 동학혁명 때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10만의 도중(徒衆)을 이끌고 관군과 싸웠으며 3·1운동 독립선언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감옥살이를 하고 병보석으로 출감 후 병사했다. 이밖에도 의병장 한봉수를 비롯해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을 바쳐 싸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굳이 조국을 잃은 슬픔의 시를 읽지 않아도 조국이 사라진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대하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먹먹하고 시리고 아프다. 불멸의 꽃향기가 끼쳐온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 자만하지 말라, 깨어있으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의연하게 살라는 외침이 들려온다.

평생을 문화예술의 크리에이터로 살아 온 동아시아문화도시 이어령 명예위원장은 중국의 대륙문화, 일본의 해양문화 틈에서 한국의 반도문화가 위태롭다며 분열과 갈등과 대립의 문화를 화합과 창조와 혁신의 가치로 이끌 것을 주장했다. 한국인의 불꽃같은 DNA를 통해 위기에서 기회로 대반전의 서사시를 쓰자는 것이다.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야겠다. 더 큰 세상, 더 아름다운 충북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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