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단 10년, 나는 아웃라이어인가

2012.11.01 15:46:37

변광섭

청주시 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가을볕이 무량하게 쏟아진다. 산성 그 너머에서 시작된 바람은 거친 숨결을 몰아쉬며 들녘과 계곡과 도시의 골목길을 붉게 물들이더니 사람의 마음까지 시심에 젖게 한다. 역시 가을은 햇살과 바람의 합궁이 있기에 미려하고 풍요로운 것 같다. 아름다움은 참으로 어렵다. 북풍한설과 작열하는 태양과 장마와 태풍에 상처입은 수많은 생명들이 그간의 진통을 이겨내야만 알곡진 열매를 맺지 않던가.

가을숲을 서성거리는데 불현듯 멀리 밀려나갔던 지난 10년의 삶이 흰 포말을 일으키며 자분자분 되돌아온다. 청주시문화재단에서 둥지를 치고 꼬박 10년을 보냈는데 지나온 일들에 대한 애틋함과 보람과 아쉬움이 헛헛한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한 분야에 하루 3시간 이상, 10년 동안 전력투구하고 몰입하면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아웃라이어)가 된다는 이론이다. 앤드루 로빈슨의 저서 <천재의 탄생>에도 다빈치, 모차르트 등 세계적인 인물 10명을 분석한 결과 10년 이상의 담금질이 있어야만 성공의 열쇠를 쥘 수 있다고 얘기한다. 미래를 볼 줄 알고 주변 장르와 소통하며 새로운 창조가치를 찾는 멀티형 인간은 타고난 것이 아니고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웃라이어인가. 나의 꿈과 조직의 미션과 사회적 책무를 다해 왔는가. 그리하여 지난 10년의 삶을 통해 이 땅을 문화의 숲, 예술의 바다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는가. 돌이켜보면 비엔날레를 통해 국내 첫 아트팩토리의 신화를 일구고 연초제조창이라는 청주의 보배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뉴욕 유엔본부를 시작으로 밴쿠버, 하와이, 동경, 런던, 파리 등 지구촌을 한 바퀴 돌며 한국의 문화가치를 세계속에 꽃피우는 일도 했다. 청주읍성큰잔치와 직지축제를 통해 청주의 정체성을 찾고 시민사회가 하나되며 예술의 향연을 펼치기도 했다. 문화도시 문화복지 청주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연구와 고민도 서슴지 않았다. 이 땅의 서정과 문화가치를 찾아내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매년 책 한 권씩 펴내기도 했다. 이 중에는 정부의 우수도서로 선정된 책도 있지만 출간과 동시에 골방신세를 져야하는 슬픔도 있었다. 청주시문화재단을 전문재단, 창조재단, 신뢰재단으로 거듭나도록 하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새로움을 찾아 스스로를 닦달하거나 번뇌와 방황의 늪에서 서성거리며 밤잠 설친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슬프다. 1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젊음만 소진하고 방기해 오지 않았는지, 어줍은 지식의 잣대로 세상을 보지 않았는지, 나만의 욕망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직장의 일을 핑계로 자식된 도리와 남편의 역할과 부모의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상대방에게는 핏대 세우며 냉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소통과 협력과 창조적인 사고와 지혜로움을 통해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만의 결과 향과 색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이 분야에 최고이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지 번뇌에 빠진다. 생각할수록 두려움에 목이 말라오며 머리칼이 올올이 곤두선다. 수척해진 그림자를 끌고 뒷간에서 온 몸을 흔들며 깊은 울음을 토하고 싶다.

그간의 삶 속에서 가장 슬프고 괴로웠던 것은 꿈과 목표를 앞에 두고 머뭇거리는 시간이 허망하게 흘러갈 때였던 것 같다. 반면에 가장 행복했던 것은 한 없이 깊은 오지나 막장에서 금광을 캐내듯 꿈이 현실이 되고 세상의 빛을 보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삶이란 언제나 각다분하기 때문에 기쁜 날보다 슬프고 번뇌로 뒤척이는 날이 더 많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새로운 도전, 새로운 희망, 새로운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새로운 10년을 준비해야겠다. 아름다움으로 물결치는 멋진 신세계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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