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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화재참사 유족들, 위로금은커녕 소송비용만 떠안아

대법원 원고 패소로 충북도 소송비용 1억7천여만 원 물어야 할 처지
유족들, "고통받는 유가족 입장 충분히 헤아려 줘야"

  • 웹출고시간2023.05.08 13:30:13
  • 최종수정2023.05.08 13:30:13
[충북일보] 충청북도의 부실한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던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유족들이 억대의 소송비용을 물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소송에 나섰던 일부 유족은 1심과 2심에 이어 지난 3월 대법원 상고심까지 원고 패소로 최종 판결이 나며 1억7천여만 원에 이르는 충북도의 소송비용까지 물어야 할 상황이다.

재판부는 소방 당국의 과실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들이 사망하기까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충북도 법무혁신담당관실 관계자는 "판결문에 원고가 소송비용을 부담한다고 명시된 만큼 실무자로서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조만간 법원에 소송비용 확정 결정 신청을 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유족들은 대법원 패소 판결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힌 마당에 거액의 소송비용까지 부담케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며 애초 충북도가 유족들과 논의했던 위로금 지급에 관해 다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족 A씨(53)는 "소방의 부실 대응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보낸 입장에서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는 건 이해가 되질 않는다"며 "오히려 애초 유족과 충북도가 잠정 합의했던 '위로금' 지급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유족 상당수는 화재 참사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 변호사가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무료 변론했음에도 개별적으로 수백만 원에 이르는 인지송달료 부담이 어려운 유족 18명과 부상자 28명이 중도에 재판을 포기하기도 했다.

유족 B씨(52)는 "사고 후 유족들에게 주어진 보상은 화재보험금과 성금 등을 합쳐 8천만~1억1천만 원이 전부"라며 "다른 재해 사고의 보상액과 견줘도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고통받는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앞서 지난달 24일 유족 대표들은 제천이 지역구인 김호경·김꽃임 도의원의 주선으로 충북도청 담당 공무원들을 면담하고 "유족의 아픔이 치유됐으면 한다. 충북도의 입장이 뭔지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도청 관계자는 "유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문제는 그간 충북도도 노력해 왔던 사안"이라면서도 "최종 소송 결과가 나온 만큼 그에 따라 검토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뭐라 답변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위로금 지급 여부는) 법률적으로 가능한지 규정을 찾아봐야 하고 도민과의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제천스포츠센터 화재는 2017년 12월 21일 오후 3시53분 제천시 하소동의 노블휘트니스앤스파 스포츠센터 지상층 두손사우나헬스에서 발생해 29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했다.

제천 / 이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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