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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8.22 17:33:21
  • 최종수정2019.08.22 17:33:21

한은숙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교직과 명예 교수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학교에선 가을 운동회를 위하여 여러 가지 종목을 준비시키느라 몹시 분주했다. 아이들은 힘들어도 다가올 운동회 날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연습했다.

선생님께서 운동회 날은 운동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오라고 말씀했었다. 이 내용을 어머니한테 말씀드리자 당시 고무줄을 넣어 입고 다니던 검정색 팬티를 운동복 대용으로 입으라 했다. 누가 봐도 그것이 팬티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당황해서 "안 돼, 선생님이 꼭 운동복을 입고 오라고 하셨어."하고 얼떨결에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자 어머닌 괜찮다고 나를 달랬다. 나는 그 옷이 영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머니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운동회복장 문제로 그토록 기다리던 운동회 날이 다가오는 것이 오히려 두렵기만 했다. 엄마에게 다시한번 운동복을 사 달라고 졸라보고도 싶었지만 그냥 포기했다.

운동회 날 아침이 되었다. 엄마가 입으라고 내 놓은 검은 색 팬티를 바라보며 난 정말 울고 싶었다. 그러나 간신히 울음을 참으며 집을 나섰다.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 우리 반 친구들을 만날까봐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는 내 마음은 천리나 걷는 듯 발길이 무거웠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 옷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운동회날 그 자리에 있는 시간이 괴롭고 창피하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난 달리기에서 2등을 해서 공책과 연필을 상으로 받았다. 그 시절에는 그것도 무척 귀한 것이었다. 평소 같으면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크게 자랑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날은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1950년대의 어린이들은 나처럼 대우 받았던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너무도 가난했고, 또한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던 시절이기에 요즘아이들처럼 자기주장을 내세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완전히 바뀌어서 어린이 세상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어린이날은 내가 살던 그 시절 하루 만이라도 어린이를 존중해 보자는 방정환 선생님의 깊은 뜻에 의해서 만들어진 날이다.

그런데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부모는 도깨비방망이와 같다. 부모들이 어린이들의 비위를 맞추는 날로 변질되고 있다. 지금은 365일이 모두 어린이날일 정도다. 어린이들을 최고로 존중하는 선진국에도 없는 어린이날이 왜 굳이 아직도 필요할까· 오히려 지금은 소외되어가는 부모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어린이날은 공휴일이고 어버이날은 공휴일이 아니다.

이제 내가 나이 들어보니, 매일 끼고 사는 자식보다 외롭게 홀로 사는 부모를 위한 단 하루 만의 효도라도 할 수 있는 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어린이날 대신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바꾸는 것이 합리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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