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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 산경탐사Ⅰ- 한남금북정맥을 가다 ⑩

추억의 편린 찾아 떠난 가을여행

  • 웹출고시간2008.09.24 18:19:0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질마재-모래재 구간에서 가장 대표적인 산인 칠보산. 청안땅을 굽어보고 있는 칠보산은 어머니 품처럼 푸근하다.

이 비 그치면 가을이 오려는가.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도 가을을 재촉하는 빗소리에 슬그머니 위세를 뒤로 한 채 자리를 내어주고, 코 끝에 와닿은 바람에는 가을냄새가 흠뻑 묻어난다.

얕게 깔린 구름과 산허리를 휘감고 돌아가는 안개가 어울려 마치 선경의 세계에 들어선 느낌을 들게 하는 괴산군 청안면 질마재(해발 350m).

청풍명월 산경탐사 9차 탐사의 시발점인 질마재는 이렇게 고즈넉한 모습으로 탐방객들을 맞고 있었다.

이번 탐사구간은 질마재를 출발해 괴산군 사리면 모래재까지 약 8.3㎞다.

다른 구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이 구간은 높낮이도 순탄하고 산길도 거세지 않아 한남금북정맥 전체 구간 가운데 가장 편안한 구간으로 꼽힌다고 한다.

편안한 코스라는 말에 왠지 안도감이 밀려온다. 질마재에서 표식기를 따라 산길로 접어들었다. 비가 온 탓에 등로는 미끄러웠지만 곧 완만한 숲속길로 이어졌다. 사위는 조용하고 사뿐사뿐 발아래 밟히는 흙의 질감이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순탄하고 완만한 오름과 내림이 30여분간 이어진다. 주위는 아직 안개로 조망이 시원치 않다. 하지만 마음은 차분해진다. 숲이 주는 안온함에 나를 맡기니 발걸음이 저절로 옮겨지는 듯하다. 편안 숲길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기억마저 희미해진 추억의 책갈피속에 고이 접어둔 나만의 추억을 말이다. 같이 산행탐사에 나선 40-50대 ‘아줌마’ 대원들의 표정도 나와 비슷해 보인다. 오로지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편린을 찾아 가을산행을 나선 것 같다.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다시 정신을 차리니 발걸음은 어느덧 칠보치(405m)에 달했다. 괴산 청안과 부흥을 연결하는 고개인 칠보치는 현재는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수레가 하나 지나갈 정도의 작은 고갯길인 칠보치는 다른 고갯길에선 느낄 수 없는 정겨움이 느껴진다. 찾는 이 없는 외로운 고갯길이 주는 고즈넉함 때문이 아닐까.

칠보치에서 칠보산(547m)까지는 계속해서 오름길이다. 걷힐 듯 하던 구름은 칠보산 산허리에 그대로 걸쳐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희미하게 청안 들녘이 보이지만 가시거리가 나빠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칠보산 오름길 숲길은 소나무가 가득하다. 보통의 육산은 낙엽송과 잡목이 대부분인데 이곳 칠보산 일대는 소나무가 주 수종인 듯 하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잔가지만 제대로 손질만 한다면 그야말로 탐스런 정원수가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중간에 만난 Y형의 소나무가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 아주 근사한 놈이다.

멋진 소나무를 뒤로 한 채 20여분을 된오름길을 오르면 칠보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왼쪽 정맥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닿는 칠보산 정상(585m)은 소나무에 주변이 가려 거의 조망을 할 수 없다.(질마재-모래재 구간은 거의 전 구간에서 조망이 나쁜 편임).

다시 정상에서 뒤로 물러나 갈림길에서 정맥을 길로 접어든다. 칠보산 정상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크게 트는 정맥길은 고도가 갑자기 뚝뚝 떨어진다. 심한 내리막길은 자칫 주위를 기울이지 않다간 넘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림길도 잠시, 길은 다시 평안한 숲길로 바뀐다. 키를 넘는 풀섶을 헤쳐나가는 고역도 없다.

높이가 떨어진 만큼 산길은 다시 올라가야 하는 법. 쪽지봉(567m)을 앞두고 다시한번 된 오름길이 시작된다. 습한 날씨 탓에 땀이 제법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린다.

이번 구간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인 쪽지봉과 칠보산을 넘어서면 길은 편안한 숲속길의 연속이다.

어느덧 산행 2시간이 지나면서 멀리 새로 뚫린 모래재 고개가 눈에 들어온다. 숲길은 거대한(?) 목장을 끼고 계속된다. 콧노래가 절로 난다. 시야에 잡히는 풍경도 목가적이다. 계곡과 산등성이를 따라 조성된 목장은 규모가 엄청나다. 이런 곳에 이렇게 거대한 목장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목장에서 키우는 염소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쳐놓은 전기울타리가 다소 섬뜩하다. 실제 전기가 통하는지 알 수 없지만 괜한 생각에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염소목장길을 따라 걷다가 뜻밖에 염소가 새끼를 낳는 모습을 보게 됐다. 아직 탯줄이 그대로 나와 있었고, 갓 어미 배속에서 나온 새끼들은 서로를 핧으며 세상과의 첫 인사를 하고 있었다. 생명탄생의 순간을 산행중에 만나다니 이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까.

목장 울타라를 따라 터덜터덜 30여분 숲길을 더 걸었다. 어느덧 이번 구간의 종착지인 모래재가 발아래 보인다. 모래재 옆에는 보광산관광농원이 자리하고 있다. 평일인 탓에 농원은 조용했다. 한쪽에 자리한 의병장격전지유적비가 이곳이 한말 의병장이었던 한봉수 장군이 활약했던 곳임을 알게 한다.

뒤돌아 지나온 길을 보니 정맥 전체를 휘감던 구름도 사라졌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추억을 찾아 떠난 가을 산행도 이쯤해서 접어야 할 시간이 됐다. 다음구간에 가야할 보광산이 어서오라 손짓하는 모습을 뒤로 하고 모래재를 내려섰다.


/특별취재반

청안과 부흥을 연결하는 칠보치. 찾는이가 적어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고갯길이다.

천연기념물 은행나무·청안동헌 등 문화유산 볼거리

괴산군 청안면은 고구려 장수왕 63년(서기475년) 랑성서원, 청원에 편입된 후에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청당현으로 신설돼 현종9년에 청주목에 속현되었다가 조선조 태종5년에 민소작지라하여 도안현과 청당현을 병합해 청안현으로 개칭됐다.

고종 32년(1895)에 청안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에 행정구역통합으로 읍내면과 동서면을 합병해 청당면으로 칭했다.

다시 3년후에 청안면으로 개칭, 법정리 11개리로 하였다가 1949년에 32개구로 개편하였다. 후에 36개구로 개편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청안은 그다지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곳은 아니다. 인근 청천과 연풍일대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많지만 청안은 빼어난 장관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읍내리 은행나무, 청안동헌 등 오랜세월을 그곳 사람들과 부대껴온 소중한 문화유산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청안의 자랑 천연기념물 165호 은행나무

청안 읍내리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에 딸린 낙엽교목이며 높이 17m, 가슴높이의 둘레 7.1m 로서 가지가 동서로 16m, 남북으로 15.5m정도 퍼져있다. 수령은 약 1천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성종(成宗) 때 이 고을의 성주가 선정을 베풀어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아 왔었다. 어느날 백성들에게 위로연을 베푸는 자리에서 우리 성내에 못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더니 백성들이‘청당(淸塘)’이란 못을 파게 되었고, 성주는 그 연못가에다 많은 나무를 심었는데 이 은행나무는 그 중에서 남은 하나다.

그후 성주가 조정으로 떠나게 되어 백성들은 어진 성주를 보내는 아쉬움에‘億昔召公甘棠樹正如令日吾心’이라는 시를 지어서 성주를 추모하면서 잘 가꾸어 왔다고 한다. 이 나무 속에는 귀달린 뱀이 살고 있어서 나무를 해하는 사람은 이 속에 있는 뱀의 해를 받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청안동헌(충청북도 유형문화재 93호)

청안동헌은 조선 청안현의 관아로 태종(太宗) 5년(1405)에 세워졌다고 전하나 여러가지 구조기법으로 미루어 볼 때 19세기 후반의 건물로 추측된다.

둥근기둥을 비교적 높은 네모꼴 주초로 받치며, 소로로 수장한 굴도리를 썼으나, 부연을 달지 않고 보머리에 초가지 장식이 없는 검소한 집이다.

이런 모양은 관아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그다지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유구가 드물기 때문에 조선시대 관아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이 건물은 ‘안민헌(安民軒)’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1913년부터 3년간 중수하여 일경(日警)의 청안주재소로 사용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청안지서장 사택으로 사용하면서 건물구조가 많이 변형되었던 것을 1981년 복원 수리하였다.

관아 건물은 고을 원이 공무를 보는 동헌, 정당(正堂)과 익실(翼室)을 갖춘 객사(客舍), 원님이 기거하는 내아(內衙)와 기타건물 들로 구성되는데, 동헌을 제외한 다른 건물은 모두 남아있지 않다.

청안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40호)

청안향교는 조선 초기에 창건된 건물로 추정되며, 창건후 여러차례에 걸쳐 중수와 보수가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있다.

건물의 배치형식은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향교배치 통식에 따르고 있으며, 전학구역은 명륜당(明倫堂)이, 후묘구역은 대성전(大成殿)이 중심이다.

대성전인 청안문묘(淸安文廟)에는 공자(孔子)를 주향(主享)하고, 공자를 중심으로 양편에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의 4성을 배향(配享)하고, 동벽에는 최치원(崔致遠)을 비롯한 10현을, 서벽에는 설총(薛聰)을 비롯한 10현을 종향(從享)하고 있다.

현재의 청안향교 건물은 1979년에서 1981년 사이에 모두 해체복원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인 대성전,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인 명륜당을 두고 외삼문에 담장을 둘렀으며 입구에 교직사(校直舍), 홍살문, 하마비가 있다.명륜당의 편액은 영조 9년(1733)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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