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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보영

수필가

꽃방 터지는 소리로 세상은 시끌벅적하다. 섬진강가의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도 들리고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개나리도 노란 꽃잎을 흔들며 눈웃음친다. 담장너머로 보이는 목련 나무엔 여인의 무영적삼 같은 꽃잎을 가득 달고 환호한다. 겨울의 언저리를 벗겨내며 일찌감치 피어나는 꽃들은 이미 지난해의 어느 시점에 꽃봉오리를 맺어 눈보라와 칼바람을 맞으며 모진고독을 견뎌 낸 것들이기에 더욱 귀하다.

봄의 전령사가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농원 한 모퉁이에 있는 듯 없는 듯 자리하고 있던 할미꽃도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거운 흙덩이를 밀치고 여린 꽃대를 밀어 올리고 얼굴을 내민 모습이 대견스럽다. 스치는 명주바람에도 몸이 시린 듯 솜털 옷으로 단장한 채 무에 그리 수줍은지 초야의 새색시처럼 살포시 고개를 숙인 채 웃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수줍게 고개 숙인 꽃잎사이로 때가 되었다며 일찌감치 허물을 벗고 나온 벌 나비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꽃잎들도 그들의 애무에 자지러지 진다. 솜털 옷 속에 감춰진 꽃잎의 색깔은 검붉은 자주 빛이다. 세월의 칼에 빈 상처에서 흐르는 핏빛 같다. 한 생을 살아내면서 다 풀어내지 못한 여인의 속내만큼이나 붉다. 자주 빛 융단처럼 윤기 나고 부드러운 꽃잎을 보며 나는 왜 아픈 여인의 속내를 생각 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할미꽃이라고 하는 이미지 속에서 여인의 한생이 느껴져서일까. 그에게도 역시 생육을 위해 빛나고 아름다우면서도 아픈 세월을 살아야 함을 알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를 통해 여인의 한 생을 본다. 여인은 신으로 부터 자궁 안에 생명의 씨앗을 품어 뼈와 살을 녹여가며 키워 내라고 하는 귀하디귀한 임무를 부여 받았다. 이는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룩하고 신성한 임무다. 여인이 어머니가 되는 순간 몸 안에 잉태된 생명이 안착하기 위해 사투를 벌리면서 빚어내는 모진 고통도 기꺼이 감내한다. 킬링필드에 간 적이 있다. 수북이 쌓여 있는 유골들의 색깔이 어떤 것들은 유백색이고 또 다른 것들은 황색을 띠고 있었다. 유백색의 유골들은 남자와 처녀들의 것이고, 황색을 띤 것은 생산을 한 여인들의 것이라고 하는 말을 해설자로부터 들었다. 한 생명을 길러 낸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몸 안의 진액들을 쏟아 붇지 않으면 태 안의 생명은 자랄 수가 없다.

내 삶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때는 언제였을까.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도 아이들을 품고 기르던 그 때가 아니었나 싶다. 자식을 품고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삶의 모퉁이에서 불어오는 모진 바람도 넉넉히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거기에 있다. 지칠 줄 모르고 그들을 위한 새로운 꿈을 꾼다. 내게 있어서도 아이들을 바라보며 꾸었던 꿈들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고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할미꽃에게 주어진 농익은 세월이 지나면 종족의 번식을 위해 꽃잎을 모두 떨쳐 버리고 알몸이 되어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꽃술을 드러내고는 그들이 여물어가기를 기다린다. 이제 그에게도 잉태한 생명을 키워내기 위한 빛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꽃잎을 모두 떨어트리고 전라의 몸이 되어 있을지라도 씨앗이 익어 가기를 기다리는 그 모습은 어쩌면 그의 전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값진 날들인지도 모른다.

그리 오래지 않아 은빛 머리카락처럼 빛나던 꽃술들은 잘 여물어 제 갈 길로 가기 위해 훠이훠이 손사래 치며 한 생을 마무리하고 떠나갈 것이다. 그의 손사래를 타고 자주 빛 꽃물들을 뚝뚝 떨어트리며 공중을 선회 하며 어디론가 날아가 새로운 곳에 정착 하여 새 보금자리를 틀고 돌아오는 봄날이 되면 고운 꽃을 피워 내리라.

모진 세월의 칼에 비이며 아픈 속내로 속울음을 울기도 하면서 한생을 살아낸 뒤 순리를 받아드리며 의연히 제 길을 걸어온 은발의 여인도 지나온 세월들을 반추해 보고는 그래도 주어진 한 생을 잘 살았노라고 자위하며 온 곳으로 돌아 갈 준비를 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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