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청주공고 봉사회 '녹색칠판'

지난해 여름부터 매주 1회 봉사활동
꾸준함에서 묻어나는 마음 깊은 진정성

  • 웹출고시간2014.05.22 19:09:30
  • 최종수정2014.05.22 19:09:30

5월의 햇살은 투명했다. 바람까지 살포시 부니 청명한 기운이 천지를 감돈다. 은발(銀髮)이 바람에 휘날리며 간간히 나뭇잎 사이로 비춰진 햇살에 반짝인다. 사직1동 경로당 앞 작은 공원에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오늘은 사직1동 봉사회에서 마련한 작은 음식들을 나누는 날이다. 특별히 일주일마다 한 번씩 방문하는 청주공고 학생들로 구성된 자원봉사회 '녹색칠판'의 봉사활동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할머니들만 가득했던 공원에 어린 학생들이 몰려오자, 한순간 생기가 돌았다. 제일 먼저 다가온 학생을 바라보며 할머니 한분이 말한다.

"아이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만 보면 더 귀해 보여!"

학생들은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숙이며 괜히 미안해한다. 한 학생이 화답한다.

"우리와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바다에 묻혔어요.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동시에 책임감이 더 생겼어요. 어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무한한 기대를 보았거든요."


'녹색칠판' 이사덕(17, 청주공고 전기에너지과 2학년) 회장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웃집 아주머니였던 사직1동 봉사회 한규자 회장의 권유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 봉사하는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주변의 노인들을 위해 청소, 말벗, 핸드크림 마사지, 율동으로 위로하기 등을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며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잊혀졌다. 하지만 청주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다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며 여러 친구들을 이끌고 다시 달려온 것이었다. 마치 연어가 봉사의 고향으로 회귀한 것처럼.


이사덕 학생은 "저희 청주공고가 특성화 고등학교다 보니 취업할 때 봉사활동 경력이 도움이 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시절 주말마다 했던 봉사활동이 생각나서 친구들과 상의해 봉사회 '녹색칠판'을 만들었어요."라고 말한다. 청주공고 학생들로 구성된 녹색칠판 봉사회는 모두 26명. 요즈음 봉사활동을 하는 많은 학생들은 마음에서 우러나 자발적으로 하기보다는 의무봉사를 채우려고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녹색칠판의 봉사활동은 달랐다. 작년 여름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을 매주 1회씩 빠지지 않고 실행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교통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한규량 교수는 "청주공고의 봉사모임인 '녹색칠판'은 건강합니다. 작년 봄에 모임을 만들어 여름방학부터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쳤어요. 진정성이 없다면 어떻게 매주 한 번씩 꾸준히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사직1동 경로당을 비롯해서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행복하게 펼치는 학생들을 통해 우리의 밝은 미래를 봅니다."라고 말한다.

"오늘은 장기자랑을 준비했어요. 할머니들께 기쁨을 주고 싶어서요. 홀로 사시는 어른들의 집을 방문해서 간단한 전구교체 같은 봉사활동을 펼쳐보려고 합니다.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획득하면 더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녹색칠판' 봉사회 정민훈(청주공고 2년) 학생의 말이다. 자신이 현재 할 수 있는 것들로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이 아름다웠다. 지금은 아직 전기를 배우고 있는 단계이므로 간단한 것들(전구교체하기, 장기자랑, 안마, 청소 등)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래에는 더 많은 재능으로 이웃들과 나눌 것이다.

식사를 마친 노인들이 경로당 앞 그늘진 공원벤치에 앉자 학생들은 하나하나 준비한 무대를 선보였다. 귀여운 손자를 보는 듯 할머니들의 눈빛에는 한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사직1동 장수경로당 현화영 회장은 "학생들이 하나하나 모두 착하고 됨됨이가 되었어요. 장하지요.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매번 이렇게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주니 고맙기도 하고. 그저 하는 짓이 예뻐요. 안마도 해주고 재롱도 많이 떨어요."라고 말한다.

장기자랑 순서로 처음에 나온 학생이 이선희의 '인연'을 불렀다. 장기자랑을 시작하기 전,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영령들을 위한 묵념도 잊지 않았다.

'이 생애 못한 사랑, 이 생애 못한 인연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학생들은 세월호 영령들을 위로했고, 할머니들은 어린 영혼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녹색칠판에는 젊은 날 펼친 봉사활동의 여정이 오늘 하루도 순백의 마음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