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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1.19 18:05:5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맑은 고을 청주 둘레길 7구간

상당산성~우암산(353m)~보현사~관음사~수암골~삼일공원~수동 성공회~청주향교~청주읍성~육거리 시장~무심천~서원대학교(지현옥 기념비)~매봉산
하루가 시작되는 산성마을의 아침은 가라앉은 듯 차분하다. 자연스레 발걸음도 살금살금 조심스럽다. 하얀 도화지에 줄을 긋듯 시작된 둘레길은 산성 소류지를 지나 상당산성 성벽을 오른다. 가지런히 정돈된 성벽을 따라 걷는 길은 공남문과 남암문을 지나 미호문 가기 전 왼쪽으로 난 등로를 따라 내려선다.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져진 산길은 길도 선명하고 숲도 좋다. 군데군데 쉼터와 계단등 편의시설도 잘 되어있다. 한바탕 풀어놓은 내리막길은 우암산 순환도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만나며 한숨 돌린다. 굴다리에서 바로 내려서면 우암어린회관과 국립청주박물관으로 하산할 수 있지만 굴다리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우암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계속된 오름길이 다소 힘들지만 20여분이면 우암산에 오를 수 있다. 해발고도 353m의 우암산은 예로부터 소가 누운 형상이라 하여 와우산(臥牛山), 또는 대모산(大母山), 장암산(壯岩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오는 청주의 진산이다. 많은 약수터와 운동시설 등이 있고 정상에서 조망되는 청주시의 전경이 아름답다. 우암산의 녹색 숲은 탁한 도시 공기를 맑게 해주고 시민들에게 쾌적하고 건강한 삶을 제공할 뿐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공유하고 있어 청주 시민들의 등산 및 기타 여가활용공간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후 둘레길은 방송중계탑 시설물 전 안부에서 내려선다음 산사의 고즈넉한 정취를 즐길 수 있는 보현사와 관음사로 이어진다. 관음사 진입로를 따라 내려오면 우암산 순환도로를 만나게 되고 청주대학교내 도로를 지나 둘레길은 수암골과 연결된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 15통3반. 이것이 수암골의 주소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곳으로 좁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청주의 대표적 달동네이다. 역사의 아픔과 함께 사회적 소외계층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수암골은 많은 사람들이 떠났고 지금은 70여호 집만 남아있다. 70년 이후 수암골은 주택 개량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담을 새로 올리고 골목 바닥 보수공사를 했지만 집들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고 몇 년 전만 해도 쓸쓸한 그저 달동네에 지나지 않았던 수암골이 2007년 이후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이홍원 화백을 비롯한 충북민족미술인협회 회원, 충북 민예총 전통 미술 위원회 회원작가, 청주대, 서원대 학생들이 추억의 골목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벽화가 그려지며 지금의 수암골로 태어났다.

수암골 벽화마을엔 정겨움이 있다.

벽화마을로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되면서 드라마 <카인과 아벨>과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명실공히 청주의 대표 관광명소가 되었다. 나름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따라 가다보면 마음까지 순수해지고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그림도 감상하고 30~40분 정도면 시골 골목길의 정감있고 편안함이 공존하는 수암골을 감상할 수 있다. 한가지 주의해야할 점은 관광객들이 늘면서 수암골 주민들이 소음과 사생활 침해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신다고 하니 가급적 오후 8시 이후의 방문을 삼가고 조용히 눈으로만 감상하는 시민의식 또한 필요하다.

수암골 전망대. 청주 시내 일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수암골을 거슬러 전망대 올라서면 청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잠시 걷다보면 삼일공원이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충청북도 출신인 손병희, 권동진,·권병덕, 신홍식,·신석구, 정춘수 등 여섯 명의 동상을 세워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후손에게는 3·1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우암산 기슭에 조성한 공원으로 공원 인근에는 산책로와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대성동에 위치한 도지사 관사 진입로를 걷는 대원들.

이후 둘레길은 1935년에 건립된 대한성공회의 한옥성당인 대한성공회 청주수동성당(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9호)을 지나 대성동에 위치한 도지사 관사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지방의 교육기관 역할을 해온 청주향교(유형문화재 39호)를 거쳐 청주 읍성의 흔적을 쫓아 보기로 한다.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와 남문로에 걸쳐있는 성안길은 청주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본정통'이라 불리다가 해방 이후 '중앙로'라는 공식적인 도로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9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일제 잔재의 지명을 청산하고 이곳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성안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청주 향교

성안길에는 옛 청주목의 관아였던 청원군청과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있었던 중앙공원이 있으며 관아 주변의 일정한 방향과 위치에 설치되게 마련인 향교와 문묘, 사직단, 성황당터가 있다. 오늘날의 행정중심인 충청북도청과 청주 시청이 있으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석교동 육거리 시장과 접하여 남주동, 서문동시장이 있다. 성안길이 청주의 중심이 된 데는 청주읍성이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청주읍성 남문터 표석앞에서 청주읍성에 대한 설명을 하시는 문화해설사 윤석준님.

청주읍성이 언제 처음 축조되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서원소경의 위상이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볼 때 대략 통일신라 초기에 축조된 서원경성이 청주읍성의 초기 형태이거나 적어도 그 전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읍성의 중앙에 해당되는 지금의 중앙공원 자리에는 충청병영이 있었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하나씩 배치하여 동문을 벽인문, 서문을 청추문, 남문은 청남문, 북문은 현무문이라 이름하였다. 이들 가운데 지금의 청주약국 앞에 있었던 남문은 4문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규모가 커서 옹성과 함께 청주읍성의 정문 역할을 하였다. 청주시 남문로 청주약국 앞에는 '청주읍성 남문터'라는 표석이 있다. 표석 뒤에는 고려초에 축조된 청주읍성의 정문에 해당되며 청남문이라 불렸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그 외 북문은 성안길 북쪽 끝에 있고 서문은 서문동 짱구만두 앞에 있다. 그리고 동문은 현 롯데영플라자 입구쪽에 표석이 있다. 현존하는 청주읍성내 주요 유구와 시설물로는 압각수· 용두사지 철당간· 남석교· 망선루· 동헌· 충청병마절도사영문· 표충사 등이 있다.

육거리 시장을 지나 서원대를 가려면 무심천을 건너야 한다.

청주읍성을 한바퀴 돌고 용두사지 철당간을 돌아본 뒤 둘레길은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육거리 시장을 거쳐 무심천을 건넌 뒤 서원대로 향한다. 매봉산 자락에 위치한 서원대 교정에 서면 청주시내 일대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그곳엔 산이 좋아 산에서 생을 다한 충북 출신 여성산악인이었던 지현옥님을 기리는 '지현옥 기념비'가 서있다. 지난 93년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데 이어 98년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파키스탄령 히말라야 가셔브롬 제2봉을 무산소 단독 등정했던 그녀는 99년 4월 히말라야 안나프르나봉을 정복한 후 하산하다 추락해 숨진 충북 출신 여성산악인이다. 서원대를 벗어난 둘레길은 청주시 개신동, 모충동, 수곡동, 산남동 주민들의 휴식처인 매봉산으로 이어지며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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