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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학창시절에 나는 청주교구 가톨릭학생회에 가입하여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고 이한구 신부를 비롯하여 김유철 신부, 박 실베스뜨로 신부 등이 학생회 지도신부를 번갈아 맡았다. 박 실베스뜨로 신부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아코디언, 클라리넷 등을 프로급으로 연주했고 작곡에도 능해 유명한 시에 곡을 붙여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때 배운 노래 중의 하나가 '호수'라는 곡이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밖에"

노랫말이 간단하면서도 하도 아름다워 작사자가 누구인지 신부님에게 질문을 하면 "그냥 노래나 불러"하고 번번이 핵심을 비켜나갔다. 그러던 중 문학에 관심이 많은 선배 하나가 우리를 몰래 모아놓고 귓속말로 "정지용 시인의 작품인데 다른데 가서 떠들면 안돼"하면서 입단속을 시켰다. "정지용· 정지용이 누구야·" 학생들은 연이어 원작자에 대한 물음표를 달았지만 누구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틈만 나면 이 노래를 불렀다. 그 당시 청주에서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한 사람들은 거의가 이 노래를 기억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여간해서 부르지 않고 우리들끼리 있으면 누군가의 입에서부터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금은 중·고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명시이지만 그때는 숨어서 부른 노래였다. 3선개헌에 이어 유신체제를 가동한 3공화국은 5.16당시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하는 혁명공약에도 나와 있듯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을 한 터여서 월북 논쟁에 휘말린 정지용의 작품에 이데올로기의 족쇄를 단단히 채웠다. 충북 옥천 출신인 정지용은 '우리나라 현대시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시인이다. 우리나라에서 한다 하는 시인들은 거의 그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했다. 1933년, 정지용이 '가톨릭 청년'의 편집 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작품이 선을 보이며 등단했고 청록파라 일컫는 박두진·박목월·조지훈 등 한국시단의 트로이카가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文章)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정지용에 대한 문학적 업적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그를 빼고는 한국의 문학사가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탐미적 작가정신과 언어의 조탁에 뛰어났던 그였기에 한국시단에서는 그를 가리켜 '현대시의 비조(鼻祖)'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충북지역에서 가장 연륜이 깊은 동인지 '내륙문학 47호'는 이석우 시인의 집필로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특집으로 다뤄 눈길을 끈다. 이 특집에는 최근 발굴된 정지용의 시와 납북에 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밝히고 있다. 새로 발굴된 시는 박태일 경남대교수가 발굴한 '의자' 등 4편이다. 최동호 고려대교수에 의해 발굴된 동시 '굴뚝새'는 동요나 동시에 관심이 많았던 정지용의 작품세계를 반추케 한다. "어머니/ 문 열어주오 들어오게/ 이불 안에/ 식전 내 재워주지/ 어머니/ 산에 가 얼어 죽으면 어쩌우/ 박쪽에다/ 숯불 피워다 주지" 추운 겨울을 나는 굴뚝새의 애처러운 모습을 일제 강점기에 설움 많았던 우리 어린이들의 모습에 비유한 동시다.

이 특집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지용의 시와 더불어 납북에 관한 궁금증도 풀고 있다. 이석우 시인은 광복이후 정지용의 행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분명 그는 남조선 노동당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노동당을 근멸시키려는 국민보도연맹의 가입압력에 시달렸다"며 "정지용은 결국 국민보도연맹에 자진 가입하였다"고 밝혔다. 월북이냐 납북이냐에 대해서 이 시인은 납북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계광순의 저서에 의하면 서대문 형무소에서 평양 감옥으로 납북 수감 중 폭격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밖의 민원서류에 첨부된 김팔봉, 계광순, 이철주, 최정희 등의 증언도 모두 납북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대시단의 위대한 시인 정지용은 남한에서는 좌파계열로, 북한에서는 변절자로 냉대 받아오다가 남한에서는 1988년도에 해금되었고, 북한에서는 1995년도를 기점으로 대학용 문학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게재된다. 정지용은 남북한을 통틀어 몇 안 되는 해금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광복 후 혼탁한 이데올로기의 강물에 빠져 익사한 그의 작품이 근자에 부활한 것은 문학사의 복원을 위해서라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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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