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자

수필가

여름방학에 집에 내려오니 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셨다. 천수를 누리시고 이 세상과, 사랑했던 자손들과, 영원한 이별을 하실 때가 된 것이다. 지금 같으면 병원에 입원해 임종을 맞으셨겠지만, 60년 전에는 병이 나면 객지에 있다가도 집으로 돌아와 임종했다. 타지에서 돌아가시면 객사라고 하여 시신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며칠 누워 계시던 할머니께 가시는 길에 양식하시라고 멀건 미음을 온 가족이 조금씩 떠 넣어드렸다. 할머니는 힘없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시고 손자인 오빠가 들어오는 것을 보시고는 옆으로 고개를 떨어뜨리셨다.

한의사가 맥을 짚으신 다음 임종하셨다는 말씀에 따라 수세를 거두고 혼백을 불러 입으셨던 옷가지를 지붕 위로 던지셨다. 소반에 삼색 나물과 접시 밥을 세 접시 담고 생전 신으시던 고무신을 대문 밖에 두었다. 할머니 모시고 갈 사자에게 대접하는 의식의 하나였다.

임종 후 3일장 5일장, 국장은 7일장 9일장을 하는데 일반인은 중생일이 끼지 않으면 3일장을 한다. 삼 일 동안 돼지를 잡아 삶고 음식을 넉넉하게 하여 동네 분들을 대접했다.

장례식 전날 빈 상여를 메고 재떨이라고 하는 행사를 하는데 요령잡이의 회심곡과 핑경소리에 상주와 동네 분들 모두가 가슴에 쌓인 슬픔을 눈물로 쏟아내었다. 예식하기 전 신랑 신부의 예행연습과 비슷하다. 장지에 가는 날 상여는 집안을 한 바퀴 돌고 동구 밖에서 한 번 더 발인제를 올렸다.

상여 뒤로 상주와 동네 분들이 뒤따르고 그 뒤로 만장 행렬이 기다랗게 줄을 서서 펄럭인다. 상여 앞에서 요령잡이가 어허 어허 댕그랑 회심곡을 부르고 뒤에선 상여꾼이 후렴을 한다. 작은 도랑이 있으면 노잣돈이 없어 못 건넌다며 상여를 땅에 내려놓는다. 상주들은 잔을 붓고 상여 줄에 노잣돈을 꽂아 드리면 상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장지까지 다섯 번이나 여섯 번 정도 반복되는데 노잣돈도 돈이지만 상여를 메고 가는 어깨를 좀 쉬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상여 줄에는 돈이 만장처럼 꽂혀 있다. 나중에 상여꾼들의 수고비였다. 꼭 쥐고 태어난 아기 주먹에는 공기만 가득하고, 빈손으로 가는 망인의 노잣돈 역시 상여꾼에게 가니, 빈손은 태어날 때나 가시는 길이나 매한가지이다.

같은 업식을 가진 부모와 인연이 되어 태어나고, 같은 업을 가진 자식을 낳고 길러준 은혜를 상여 줄에 받아 자식에게 빚진 것조차 탕감받으려고, 요령잡이와 상여꾼들에게 돌려주고 가는 장례문화는 조상들의 지혜인 것 같다.

장례를 모신 뒤 삼우제를 지내고, 살아생전 쓰시던 방에 지청을 꾸며 아침저녁으로 상식을 올리고, 초하루와 보름날에는 친척이 모여 제를 모셨다. 망자의 넋이라 믿던 손톱, 발톱, 머리카락은 삼베에 고이 싸고 곽에 넣어 지청 위에 모셔두었다.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맏상제는 죄인이라 하여 젯밥을 먹었는데 탈상 때가 되면 상주 얼굴은 핏기가 없었다. 진기는 혼백이 드시고 허울만 남은 뫼만 드셨으니 상주 얼굴이 수척해졌다고 어른들께서 말씀하셨다.

태어나고 가는 것 또한 순리인데 태중에서는 엄마의 진기를 먹고 자라고 임종해서는 땅, 물, 바람으로 흩어지니 부모와 자식의 인연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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