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국모 시해 비극의 교훈

2023.10.04 17:12:11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문화의 달을 맞아 필자는 서울 원서동 창덕궁 앞을 자주 지나가게 된다. 전시회가 열리는 인사동을 찾는 시간에 국악로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간혹 있다. 그러나 창덕궁 정문을 바라보면 문득 참담한 역사를 지을 수가 없다.

지금부터 128년전 1895년 10월 8일. 창덕궁 안에서 국모 민비가 일본 낭인들에게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다. 우리 역사에 이처럼 왕비가 외국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일은 없었다.

기록을 보면 더욱 황당한 것은 이 만행에 민비의 정적 세력들인 조선군 훈련대도 참여했다는 것이다. 주도 세력은 당시 조선 주재 일본 공사인 미우라를 중심으로 일본군 공사관 수비대와일본인 낭인들이다.

신라 말 후백제 군이 신라도성을 기습 침공하여 경애왕을 자살케 했을 때도 왕비는 살해되지 않았다. 일본 낭인들은 궁녀 속에 있는 민비를 찾아 내 칼로 난도질을 하여 창덕궁 후원에서 시신을 불 태웠다.

어떻게 대한제국의 국모인 왕비가 이처럼 무참히 살해 될 수 있었을까. 총과 창검을 쥐고 창덕궁을 지켰던 무장 시위 군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당시 고종은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위기에서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했다. 이를 아관파천이라고 기록한다. 근세사 가운데 가장 수치스런 황제의 비굴한 도망이다.

궁을 지키던 군사들도, 황제도, 대신들도 자기들 살 궁리만 했던 것인가. 어떻게 국모 한 분을 지키지 못했던 것일까. 일본이 얼마나 조선을 깔 봤으면 폭도들을 시켜 한 밤중에 궁으로 쳐들어가 국모를 찾아내 만행을 저지른 것일까.

수문장은 할복자결이라도 했어야 옳았다. 고종은 러시아 공관에 숨어 떨고 있지만 말고 일본의 야만적 행위를 성토하고 선전포고라도 했어야 했다. 무능한 황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가정이지만 고종이 강한 결기만 보였어도 한일합방이라는 국치를 당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민비시해의 역사를 을미사변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비극이 알려지자 제일먼저 일어난 대일 항쟁이 바로 제천 유인석의 거의 였다,

충남 청양에서는 분노한 최익현과 선비들이 거사했으며 충주의병들은 유격전을 벌이며 일본군과 싸웠다. 70년대 후반에 충주에서 찾은 의병일기를 보면 분노한 의병들이 일본군을 사로잡아 배를 가르고 간을 꺼내 국모의 원혼을 위로하는 천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만약 고종이 분노하여 일본에 항쟁했다면 의병들의 기세도 더욱 확산되었을 게다. 조선 관군은 아이러니 하게도 일본군과 합세하여 의병을 진압하는데 동원되기도 했다.

의병을 일으킨 면암 최익현은 체포되어 대마도로 끌려가 옥중에서 단식으로 죽음을 선택했다. 아, 선비들의 기개가 이랬는데 국록을 먹었던 황실과 벼슬아치, 관군은 일본에 아첨하여 목숨을 구걸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을미사변은 약한 나라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 가를 입증한다. 한나라를 책임진 정치지도자가 나약하고 결기가 없으면 열강에 치욕을 당하고 먹힌다는 것을 알려준다.

지난 주 서울도심에서는 국군의 날을 맞아 우리 군의 늠름한 행렬이 있었다. 군이 보유한 최신 무기도 국민들에게 선을 보였으며 윤대통령도 나와 비를 맞으며 강군(强軍)을 박수로 격려 했다. 이날 장거리 지대공유도무기(L-SAM), 패트리엇 미사일, 국산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 천궁, 천무 다연장 로켓등이 나왔다. 그리고 해외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 K-9 자주포와 지대지 현무 미사일도 국민들에게 공개됐다.

각종 미사일을 쏘며 핵무기로 한반도를 겁박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다. 어떤 격변에도 국치의 역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문화의 달 10월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민비시해역사를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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