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미소불상' 진짜 국적은

2020.10.21 15:27:43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70년대 후반으로 기억된다. 청주시 청원구 영하리 옛 절터에서 발견 된 고려초 석조여래불좌상은 미소가 일품이었다. 불상이 찾아진 절터는 비하리에서 초정약수로 가는 중간 왼편 언덕이다. 처음에는 몸체만 있는 파불(破佛)로 발견되었으나 인근 무당이 장독대에 안치하고 있던 불두(佛頭)를 찾음으로써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불상은 지금은 작고하신 서원학회 고(故) 이원근회장(강릉대 교수)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찍은 흥덕사지를 찾는다고 청주시와 청원군 일대의 절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얻은 쾌거였다. 필자도 이 불상을 구조하는 과정에 참여하였는데 당시를 기억하면 지금도 짜릿하다. 현재 불상은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불상의 생명은 '미소에 있다'라는 말이 있다. 시대가 올라갈수록 아름다운 상호를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백제시대 불상이다.

백제 불상이 왜 이렇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고구려와 백제에 불교를 전해 준 1천 5백년전 중국의 북위, 북제나 남조인 양(梁) 나라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다.

북위시대 불상은 대부분 돌로 만든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조각 솜씨와 미소는 단연 최고다. 무려 4만개의 사찰이 있었다는 남조 양나라 수도 남경에서 찾아진 석제 불상의 미소도 그에 못지않다. 중국학자들은 불상 뒤에 광배가 있는 것을 배병식(背屛式)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새겨진 여러 구의 보살상을 보면 미소가 모두 아름답다.

백제는 양나라와 매우 가까웠다. 양나라 무제(武帝)와 백제 성왕(聖王)은 독실한 불성으로 얽힌 관계였다. 무제는 백제의 요청으로 와(瓦)박사를 비롯한 건축 장인과 지식인들을 보내 백제의 문화력 제고를 지원했다. 양나라가 있던 남경 사찰 유적에서 발견된 배병식 불상들은 여성적인 모양의 보살상이 많다. 손에는 동그란 모양의 보주(寶珠)를 가슴아래 위치에서 두 손으로 잡고 있다.

백제 성왕이 일본 긴메이 천왕(欽明)에게 불상과 경전을 보내면서 특별히 당부한 것은 보주를 들고 있는 보살상의 신비로운 효험이었다. 일본서기에는 석가상을 보냈다고 되었는데 이때 금동보살상도 함께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부여 절터에서 발굴되어 일제강점기 일본에 건너갔던 금동보살입상을 소장자가 너무 높은 값을 달라고 하여 사들이지 못한 사실이 또 언론에 보도 됐다. 발굴 후 일본 책임자들이 몰래 빼돌린 것으로 따져보면 도난당한 유물이다. 본래 주인에게 장물 값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달라는 것도 화가 나지만, 해외에서 유전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사들일 수 없는 당국의 경제적 취약도 문제가 있다. 이 불상은 그동안 '백제미소불상'으로 대접을 받아왔다.

그런데 필자는 이 금동불상이 백제의 것이 아니고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본다. 상호는 아름답지만 의문(衣紋), 몸의 뒤틀린 자세, 주조방식이 당나라 불교유물이 본격 유입 된 7세기 후반의 작품이다. 비슷한 양식의 금동보살상이 경북 선산에서 찾아진 경우도 있다.

백제 구토에서 출토 됐다고 무조건 '백제의 미소'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빼어난 상호를 지닌 청주 영하리 좌불상은 고려 초기로 추정되고 있지 않은가. 제작시기를 단대(斷代)할 때는 그 시대에 유행했던 여러 불상의 양식을 정밀하게 비교, 분석해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 있는 불상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소위 '백제 미소불상'에 대해 학계의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가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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