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지키지 못한 대통령

2020.10.07 15:20:07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우리 역사에서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한 선조처럼 비난 받는 왕도 없을 것이다. 선조는 외침을 당하여 백성들을 지키지 못한 왕으로 기록 된다. 충주 달천에서 배수진을 친 도순변사 신입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한양을 버리고 북으로 파천의 길을 떠났다.

선조가 궁을 버리고 도주했다는 소식을 들은 도성 백성들은 울부짖었다. '나랏님이 백성을 버리면 우리는 누굴 믿고 살란 말입니까?' 임진강 도강기록에 보이는 참상은 차마 읽기조차 민망하다. 누가 귀빈인지 누가 왕인지도 모르고 모두 살려고 앞을 다퉈 배를 타려고 아우성이었다고 한다.

일본군은 한양을 접수하고 약탈을 시작했으며 부녀자들을 닥치는 대로 겁탈했다. 민초들의 고통은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순박한 백성들은 우리 임금을 지키겠다며 격문을 돌리고 군사들을 모았다. 시골 선비, 평민, 양반집 가노(家奴)들이 의병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들은 한번도 전쟁 경험이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중봉 조헌(重峯 趙憲)이 제일 먼저 기의(起義) 횃불을 들었다. 옥천 안내 밤티에 은거했던 중봉은 근왕을 위해 의병들을 규합했다. 의병들은 옥천 근교에서 공부하러 다닌 제자들이었다. 부친이 의병이 되면 큰 아들은 종사와 모친을 봉양 위해 빠진다. 둘째 아들부터 노복에 이르기 까지 이름을 올리고 무기를 들고 부친을 따랐다.

중봉 의병이 청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은 마침 영규대사(靈圭大師)가 이끄는 승병들이 합세한 때문이다. 의병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덤볐으니 일본군도 성을 버리고 도주 했다.

그러나 이들 중봉 의병들은 금산 싸움에서 모두 전사한다.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과는 적수가 안됐다. 그러나 7백명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 전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거의(擧義) 동기가 됐다. 순국의사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 것이 옥천, 보은, 영동 민초들이었다. 우리는 왜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외면하고 있을까. 충북 어디에도 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순절비가 없다.

의병들은 유격전으로 일본군을 괴롭히고 또 관군을 도와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훗날 임진전쟁에 참가했던 한 일본군 장군은 조선전쟁에서 패퇴한 것은 의병들 때문이었다고 술회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2020 대한민국 어게인'을 캐치프레이즈로 KBS 단독 콘서트에 출연한 가황 나훈아씨가 나라를 걱정하는 코멘트를 하여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그는 KBS가 거듭 날 것을 주문했는가 하면, 우리 역사에서 보면 왕이나 대통령 가운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 이들이 없다고 했다.

그가 역사에서 예를 든 애국 민초들은 유관순, 안중근, 윤봉길의사였다. 또 국민이 힘이 있으면 가식정치 즉 위정자(僞政者)가 나올 수 없다고도 했다. 코 끗이 찡했던 것은 코로나 19 고난 속에 밤낮으로 헌신한 의사, 간호사들을 진정한 영웅으로 호칭하며 고난을 이긴 저력으로 국난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대한민국 공직자 하나가 북한군의 총을 맞고 사살되어 시신이 불태워 졌다. 군과 대통령은 그가 절재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을 파악하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지금 대통령이나 각부 장관, 집권당 정치인들 모두 국민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가 반문하고 싶다.

후일 역사에서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비겁한 대통령이나 정부로 기록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가황, 예인의 충정어린 쓴 소리가 무기력한 위정자들의 가슴을 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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