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창극 중흥 시켰으면

2020.12.09 15:52:30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요즈음 창극(唱劇)이 인기가 고공행진이다. 국립극장의 창극공연은 코로나 19에도 일찍부터 매진 사례다. 그만큼 수도 서울에 창극 인구가 많다는 증거다.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여성 국극에 매료되어 공연이 있는 날은 학교도 가지 않고 구경을 했다가 정학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극장 앞에만 가면 기도를 보는 아저씨가 꼬마 손님이 왔다고 무료로 입장시켜 제일 앞자리에 앉혀주곤 했다.

특별히 아쟁의 선율이 좋았다. 가슴을 후벼 파는 비감의 음악이다. 막이 올라갈 때 울려 퍼지는 징소리, 고막을 찢는 태평소. 비록 어리지만 이 소리가 들려오면 극장으로 달려갔다. 몰래 숨어들어가 보기도 했다.

또 공연자들의 슬픈 아리아가 가슴에 닿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노동요로 부른 육자배기의 여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악인이 안 된 것이 이상하다.

지난 11월 중순 국립극장에서 공연 된 '아비방연'은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을 배경으로 권력의 야욕에 무너지는 한 가정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필자는 이 공연을 보고 막이 내리는 순간 까지 비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 아름다운 공연이 있을까. 방탄 소년단이 세계의 1억 명이 넘는 열광적 팬들 앞에서 불렀던 아리랑의 감동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필자만의 감회로 그친 것은 아니었다. 옆자리에서 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훔치는 여성관객도 있었다.

창극은 대사를 창으로 부른다. 판소리, 단가, 육자배기, 흥타령 등 많은 소리 가락이 어울린다. 우리 소리의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충북은 두 분의 악성을 배출한 국악의 고장이다. 충주는 가야금을 일으킨 악성 우륵이 산 곳이고 영동은 아악을 정리한 박연 선생을 배출한 고장이다.

망국의 한을 안고 가야금 하나만을 들고 충주에 온 우륵, 치열한 전장 속에서 젊은 진흥왕을 만나 특별히 비호를 받았다. 심천강변에서 퉁소를 불며 만년을 보낸 박연선생의 사연도 창극의 소재로 삼을 만하다.

어디 그뿐인가. 선조 때 낭만시인 백호 임제(白湖 林悌)의 사연이 있는 곳이다. 그가 풍류를 쫓다 벼슬에서 물러나 한때 은거한 이 바로 보은 종곡. 훌륭한 인품을 지닌 학자 성운(成運)의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숱한 기생들과 염문을 뿌렸던 장안의 호남 임제가 성운의 제자가 된 것은 학문을 하고 싶었기 때문 이었을까. 이 시인은 풍류행로를 그만두고 마음을 잡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를 너무나 사랑했던 평양기생 한우(寒雨)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한우가 처음 임제를 만났을 때 은밀히 유혹한 시에 답한 절구가 처연하게 와 닿는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단양 관기 두향은 퇴계 이황이 군수로 부임해 오자 그만 사랑에 빠진다. 퇴계도 그녀가 선물한 매화를 소중히 간직한 채 임종하는 순간에도 화분에 물을 주라고 유언했다. 끝내 두향을 향한 애틋한 정을 숨기지 못했다.

두향도 퇴계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는가를 알고 있었다. 퇴계가 세상을 떠나자 강선대에서 몸을 날려 저승길에서 임을 따라갔다.

충북은 창극 소재가 될 만한 아름답고 슬픈 역사적 사연들이 많다. 전국의 창극 팬들을 불러오는 국악의 본 고장 다운 사업을 구상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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