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미움이 인간의 역사'

2022.09.14 16:16:03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필자가 좋아하는 가수 중 한분이 소리꾼 장사익이다. 굵게 패인 얼굴의 주름과 고요하게 토해 내는 노래 가락은 한이 넘쳐 비감에 젖게 한다. 장사익이 부른 백설희 노래의 '봄날은 간다'는 명곡의 반열에 올라있다.

'어머니 꽃 구경 가요'라는 노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늙은 어머니를 산 속에 버리려고 아들은 지게에 어머니를 태웠다. 그리고 산으로 올라간다. 산이 깊어지자 어머니는 '아이구머니나'하며 자신을 업고 꽃구경 가자는 아들의 뜻을 알아차린다.

그때 어머니는 길가에 솔잎을 따 뿌리기 시작한다. 아들이 '솔잎은 뿌려 뭣 한데유'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돌아갈 길 잃을까 걱정이구나' 자신을 산 속에 버리려는 아들의 야속함 보다 길 잃을까 걱정하는 어머니 마음이다.

장사익은 불혹을 넘어 데뷔한 늦깎이 가수다. 마흔다섯을 넘긴 후에야 그는 소리꾼으로 무대에 서게 됐다. 20여 년간 15군데나 직장을 옮겨 다닐 정도로 인생은 파란만장했다고 한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장사익은 이렇게 술회했다.

"안 다녀본 회사가 없었습니다. 보험회사 무역회사 카센터까지. 직장생활이 안 맞는 사람인데 그걸 모르고 꾸역꾸역 다녔지요. 그땐 세월을 버린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다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무료함을 달래려 노래교실도 다니고 악기도 배웠습니다."

장사익은 태평소 연주자가 되겠다며 전국의 농악, 사물놀이를 돌며 공부했다. 국악을 좋아한 힘이 그를 출세의 길에 올려놓게 된다. 장사익의 뛰어난 실력을 알게 된 이는 천재 피아니스트 임동창 교수였다.

장사익은 술좌석에서 임교수의 피아노 반주에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날 이후 마음이 맞았던 두 사람은 신촌에 있는 소극장에서 이틀간 공연을 했다. 100석 규모인 작은 극장이었지만 관객이 구름같이 몰렸다. 장사익 소리꾼은 이렇게 가수로 데뷔했다.

장사익 노래는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미국 등 외국에서 교민들이 그를 초청하여 공연을 부탁했다. 한때는 2년간 공연 스케쥴이 꽉 차기도 했다. '찔레꽃' '봄날은 간다' 그리고 '꽃구경'은 타향에서 고국이 그리운 교민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장사익은 정통 트롯가수는 아니다. 그렇다고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도 아니다. 장사익이 부르면 그 노래는 청중의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서 그를 '장사익 류'라고 분류한다. 1995년 1집 '하늘가는 길'을 발표한 후 그는 13번의 전국투어 공연과 9장의 정규음반을 발표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한국대표가수로 애국가를 불렀다. 고난 속에서 역경을 이기고 한국의 탑 가수로 성공한 것이다.

장사익이 10월 초에 서울을 시작으로 가을 공연을 시작한다. 이번 소리판 주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라고 한다. 이는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 장사익은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싸움도 하고 사랑도 하고 미워하면서 인간의 역사가 된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만남 자체가 차단됐다. 부서지고 깨지고 화해하는 과정이 사라졌다. 이제 만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인간은 누구나 사랑과 미움의 역사를 가지고 산다고 했다. 미움도 설움도 사랑에서 싹이 튼 감정이다. 화해하지 않는 미움은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끝내 좌절하지 않고 화해하며 꿋꿋하게 살아온 소리꾼 장사익. 그의 한(恨)을 사윈 소리와 성공 인생이 이 시대 빛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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