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어머니들의 나라 한국

2020.03.11 16:45:59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어머니는 죽음의 문턱에 걸터앉아 자식을 낳는다'고 했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출산 과정에서 산모가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다. 종종 조선시대 양반의 묘소에서 아이를 뱃속에 넣고 생명을 잃은 비극저인 어머니들의 시신이 발굴된다.

고려 공민왕비는 원나라 노국공주였다. 배원파였던 공민왕은 처음에는 노국공주를 피하고 잠자리마저 외면했다. 그런데 노국공주가 임신을 하자 금슬이 좋아졌다. 그런데 출산하는 과정에서 노국공주가 애처롭게 목숨을 잃었다.

공주의 죽음을 지켜 본 공민왕은 그만 미쳐버리고 만다. 공민왕은 정신이상으로 일상을 보내다 그만 살해 되는데 고려 국운이 기울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 경전이면서 유교사회에서 가장 사랑받은 불서(佛書)가 있다. 바로 '부모은중경'이다. 왜 이 경전이 부처를 타부 시 했던 조선에서 그토록 사랑을 받은 것일까.

부모은중경을 읽고 제일 감동 받은 왕은 정조였다. 임금을 감동시킨 대목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가 죽음을 감수하고 자식을 낳아 온갖 정성으로 키우는 대목이었다. 기가 막힌 내용이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는 3말 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고 8섬 4말의 혈유(血乳)를 먹인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 수미산(須彌山)을 백 천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

일찍이 부친을 뒤주 속에 갇혀 죽는 것을 목도한 세자는 홀어머니의 아픔을 누구보다 절감했다. 아들을 지키려고 입술을 깨물고 산 어머니 혜경궁 홍씨. 세자는 왕이 되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어머니의 한을 풀어 드리는 일이었다.

혜경궁 홍씨는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한 번도 수원에 있는 남편의 묘소를 참예하지 못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한 열성조에 전무후무한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임금은 곤룡포를 벗고 전쟁에 나가는 전립차림으로 말을 탔으며 어머니의 가마를 시위하고 갔다. 비록 지존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전통적으로 자식 성공이 일생의 가장 큰 희망이요 행복이었다. 훌륭한 어머니한테서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한국 어머니의 표상으로 숭앙된다. 백사 이항복도 어머니 최씨의 훈육으로 훌륭한 재상이 되어 조선을 환난에서 구했다.

6.25의 환난을 겪은 한국의 어머니들은 남편을 잃고 생활 전선에 나가 5~ 7남매나 되는 자식을 키우고 살았다. 가난 속에 살아온 아들, 딸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를 세계 10위경제국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그 위대한 힘은 지금도 곳곳에 살아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어떤 고통, 위험도 감수한다. 그런데 요즈음 결혼을 기피하는 풍조로 동네에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꼴찌라고 하지 않나.

영국 한 조산사가 지은 픽션 '여자는 목숨 걸고 아이를 낳는다'라는 책이 요즈음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이를 낳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출산처럼 숭고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신은 어느 곳이나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이스라엘 속담이 기억난다. 아이를 낳는 여성들이 진정한 애국자가 되는 세태다. 위대한 어머니들의 나라 한국의 전통이 살아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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