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미국 흑인 폭동

2020.06.10 17:19:07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세상은 잔혹했다. 인간들은 다 적이고 늑대다' 우수가 넘치는 흑인영가(黑人靈歌 Negro Spirituals) 속에는 절망과 원한이 가득하다. '깊은 강(Deep river)'은 가장 많이 알려진 영가다. 검은 피부색의 유명 가수들이 불러 한국인들도 좋아하는 노래다.

깊은 강 내 집은 저 강 건너 / 깊은 강 주 나 그곳에 가기 원합니다 / 깊은 강 내 집은 저 강 건너 / 깊은 강 주 나 그곳에 가기 원합니다. 복음의 잔치에 그대 가지 않으려오 / 언약의 땅 평화의 그곳 오 깊은 강..

그들은 수 백년을 노예로 살면서도 모세가 가나안을 그리워했듯이 언약의 땅을 갈망했다. 깊은 강, 절망의 건너에 파라다이스가 있다고 생각했다. 흑인 소년 쿤타킨테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자유가 있는 곳은 바로 '고향'이었다.

쿤타킨테는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 주인공이다. 서아프리카 감비아 만딩카족 마을에서 납치되어 미국에 팔려 멸시를 받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소년은 그리운 고향을 잊지 않으며 수 없이 탈출을 시도 했지만 끝내 비겁하지 않은 용감한 전사로 남는다.

지금도 미국 사회 곳곳에는 흑인들에 대한 백인사회 편견과 멸시의 감정은 상존한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사라지지 않았다.

흑인들이 받았던 불평등을 말해 주는 재미난 일화가 하나 전한다. 1950년대 후반 미국 남부에 살던 어느 흑인이 투표장을 찾았다. 백인 관리들은 흑인에게 투표할만한 지적 능력이 있는지를 검사하겠다고 했다.

관리들은 흑인에게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질문했다. 그리고 역사 지식은 물론 심지어는 과학에 관련된 문제까지 물었다. 그런데 이 흑인은 모든 문제를 다 맞혔다.

백인들은 또 중국어 신문을 내밀면서 '이 신문을 읽을 수 있다면 투표권을 행사하게 해 주겠다'라고 했다. 흑인은 그 신문을 보더니 '내용은 모르겠지만 헤드라인은 읽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한자를 못 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관리들은 놀라운 표정으로 '헤드라인을 읽을 수 있다고·'라고 반문했다. 흑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신문을 읽었다. '여기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흑인이 있다.'

흑인 폭동은 지난 68년도에 이어 92년도에 가장 컸다. 68년 4월4일 멤피스에서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것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소요였다. 사망자가 72명이나 발생한 이 폭동에는 1만2천여명의 연방군이 투입되기도 했다. 지난 92년 폭동은 백인 경찰에게 쫓기던 흑인이 4명의 백인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도화선이 됐다.

이번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폭동은 백인경찰이 흑인의 목을 졸라 질식사시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시위 과정에서 1만 명 이상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번 사태로 여러 도시의 한국교민 상점이 습격당하거나 털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경찰과 흑인들 사이에 폭력을 자제하자며 허그 하는 풍경이 전해져 다행스럽긴 하다. 지금은 폭동 사태가 수그러졌고, 제도 개혁을 통해 인종 차별을 끝내자는 목소리가 거리에 가득 찼다.

흑인 문제는 미국이 안고 있는 제일의 현안이다. 빈곤의 대물림, 실업, 마약 문제는 심각하다. 흑인에 대한 차별대우나 폭행사건이 일어나면 언제 든 화약고처럼 다시 폭발할 수 있다. '세상은 잔혹하고 인간들은 다 적이며 늑대'라는 노래가 슬럼가에서 안 불려 질 때는 언제인가. 진정 인종 차별이 없는 세상이 돼야 평화가 찾아 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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