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한 빈민가 차고. 거리의 문제아 11명은 익숙한 총 대신 난생 처음 악기를 잡았다.
오합지졸 단원의 '소음'은 점점 '하모니'로 변했다.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미래를 꿈꿨다. 오케스트라 단원 규모는 25만명으로 늘었고, 세계적 음악가도 배출됐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 기적의 오케스트라라 불리는 베네수엘라의 감동은 영화로도 제작됐다.
부모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청주 봉명동 그룹홈 '참 좋은 집'에 모여사는 칠공주가 악기를 든 채 활짝 웃고 있다.
ⓒ임장규 기자
세계인의 눈시울을 적셨던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태평양을 넘어 대한민국에서 재현됐다.
단 한 번도 부모 손에 자라보지 못한, 부모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여자아이 7명으로 구성된 '칠공주 오케스트라'.
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복지시설에서 자랐다. 지난 2005년 그 시설 교사였던 구해숙(41)씨가 아이들을 거뒀다.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한 주택에 '참 좋은 집'이라는 그룹홈을 꾸몄다.
사무치게 그리운 모정을 음악에 쏟아 부었다. 구씨는 딸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악기를 가르쳤다.
첫째(13)와 셋째(11)는 가야금, 둘째(12)와 일곱째(8)는 해금, 넷째(11)는 첼로, 다섯째(10)는 플루트와 소금, 여섯째(10)는 바이올린.
제각각 소리는 작년부터 하모니를 냈다.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칠공주 오케스트라의 18번 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다.
구씨는 오는 가을, 아이들의 작은 음악회를 열어줄 생각이다. "음악회 때 아이들의 성장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할 거예요. 우리 딸들이 얼마나 예쁘게 컸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음악을 통해 칠공주는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다. 학교 성적도 쑥쑥 올랐다. 그런데 엄마 구씨의 주름살이 늘었다. "이 녀석들 교육비가 걱정이에요. 그래도 전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을 최대한 살려줄 겁니다. 이 아이들도 그럴 권리가 있거든요."
칠공주의 방에서 다시 하모니가 흘러나온다. "창 밖에 앉은~".
어쩌면 칠공주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중단될 지도 모른다.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기초생활보장수급비만으로는 칠공주의 적성을 살려줄 수가 없다. 그 돈으론 말 그대로 기초생활밖에 하지 못한다.
사랑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보듬어줄 관객이 필요하다. 사회의 따뜻한 박수가 있을 때 칠공주 하모니는 엘 시스테마의 감동을 넘어설 것이다.
/ 임장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