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6·25참전용사 변종복씨

나라 지켰지만 자식에겐 '가난 대물림'
허벅지 총알부상 치료기록없어 상이군경 못돼
기초수급도 못받아…노 부부 폐지 주워 생활

2011.06.12 20:17:54

"정확히 5분 주갔어. 남자는 한 놈도 빠짐없이 기어 나오라우. 숨어 있다 걸리면 총살이야!"

전쟁이 났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1950년 여름.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은 불과 며칠 만에 청원군 내수읍 세교리까지 들이닥쳤다.

"탕, 탕!" 따발총 소리가 하늘을 갈랐다. 세 살배기 아들을 꼭 껴안은 아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방법이 없었다. 변종복(85·당시 24세)옹은 순순히 인민군 대열을 따랐다. '경기도 가평'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였다. 인민군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아마도 이 근방 전투에 투입될 모양이었다.

"인민군 총알받이로 죽을 순 없었어. '똥마렵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는데, 웬일인지 시간을 주는 거야. 그 길로 도망쳤지."

이름없는 용사 변종복 옹이 전쟁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아내 이시호 여사가 변 옹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임장규 기자
5사단 군속(軍屬, 군무원의 옛말)에 자원했다. 곧바로 전투에 투입됐다. 실탄을 나르는 임무였다.

전투 현장은 끔찍 그 자체였다. 곳곳에 널린 시체, 코 속을 파고드는 피비린내. 전쟁의 참상에 넋을 논 순간, 왼쪽 허벅지가 뜨끔했다.

지혈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실탄을 날라야 했다. 동료 군속이 쓰러졌다. 떨어진 포탄에 김 일병 다리가 잘려 나갔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도 안 됐다.

그렇게 2년을 버텼다. 고향 부모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지났을까. 이번엔 징집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다시 가야 했다.

논산훈련소를 거쳐 21사단에 배치됐다. 강원도 전역을 누볐다. 싸우고, 또 싸웠다. 산을 오르내릴 때마다 왼쪽 다리가 저려왔다.

"얼마 전 병원엘 갔어요. 그 때 다친 다리가 아파서. 의사가 놀라더라고. 글쎄, 총알이 지금도 박혀 있다는 거야."

변 옹이 감았던 눈을 지그시 뜬다. 동갑내기 아내 이시호(85) 여사가 커피를 들고 온다. "마누라가 고생했지. 전쟁 끝난 뒤 평생 남 논밭에서 품을 팔았어. 지금도 다리 아픈 나대신 폐지를 주워. 그게 우리 생계수단이야."

전쟁 탓에 자식교육을 못했고, 가난은 대물림됐다. 자식은 자식대로, 노부부는 노부부대로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목숨 바쳐 지켜낸 대한민국은 철저히 기록으로 노부부를 평가했다. 부상 치료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상이군경에서 탈락시켰다. 부양 능력도 없는 자식을 이유로 들어 기초수급대상에서도 제외했다.

6·25전쟁 발발 61년. 이름 없는 용사 변종복 옹은 한 달 폐지벌이 몇 만원에 참전유공수당 12만원, 청주시 지원금 5만원, 노령연금 14만원으로 살고 있었다.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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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투병 중인 주항(4)군을 도와준 분들입니다. <나눔의 행복 7회·5월23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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