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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는 햇빛 속에 매화꽃이 그윽하다. 지난 겨울날,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피어난 꽃의 영롱함과 향기에 온 몸이 취해 버렸다. 누더기 같은 삶의 연속인 내게도 꽃내음이 난다. 상처없는 기쁨이란, 인고의 시간을 갖지 않은 희망이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영국의 계관시인 워즈워드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라며 봄날을 예찬하지 않았던가.

올 봄은 낯선 땅 일본의 가나자와에서 맞이했다. 가나자와 한복판에 있는 21세기미술관을 들어서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밝고 투명한 햇살 아래 매화꽃이 내 어깨를 스치면서 매혹적인 향기를 내뿜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아 봄이로구나'라는 탄성과 함께 미세한 떨림이 시작되었다. 애나 어른이나 꽃을 보면 순백의 마음이 되는 것 같다.

인구 45만의 중소도시인 가나자와에 매년 7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사계절 그 어느 곳 할 것 없이 방문객들로 문전성시인 것이다. 다양한 전통 공예로 특화시키는 것은 물론 이것들을 현대미술과 디자인으로 차별화하고 있으며 자연과 생태, 다도와 술, 과자와 음식, 축제와 이벤트 등 발 닿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즐거운 비명으로 가득하다.

가나자와의 변신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 무신들의 전쟁터라는 네거티브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키자는 시민들의 의기투합이 있었다. 성곽, 정원, 금속공예, 음식과 술 등 기존의 역사적인 인프라를 적극 장려하되 다양한 문화적 가치와 접속 가능한 도시로 리매핑하자는 게 변화와 혁신의 출발이었다. 100년 가까운 그들의 노력은 가나자와를 일본지역 대표적인 공예도시, 문화도시, 생태도시, 관광도시라는 명성으로 화답하게 되었다.

가나자와 시가지 중심에는 가나자와성 공원과 겐로쿠엔이 있고 이를 둘러싼 현대화된 번화가가 자리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랑데부라고 할까. 가나자와성곽의 웅장함과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수백년 수령의 나무들, 그리고 일본 3대 공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의 아름다움과 광대함은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다. 겨울에는 오래된 소나무 가지가 눈에 부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무 한 가운데에 큰 대나무를 세운 뒤 소나무가지를 새끼줄로 매달아 올리는 '유키즈리'의식을 치르는데 지금은 자연미와 겨울정취를 한껏 뽐내는 풍물로 자리잡았다.

가나자와에서 공예인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어림잡아 4천여 명에 달한다. 도자 옻칠 금속 금박 종이 염색 악기 등 그 종류도 다양하며 이중 국가와 지자체 지정 장인이 37명이나 된다. 전승만을 고집하거나 현대작품만을 추구하면서 대립각을 세우는 우리네 공예계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전통을 계승하되 창의적이고 생활중심으로, 그리고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크고 작은 음식점과 숙박시설, 가정집 모두 이 지역 공예품을 애용한다. 공예진흥협회에서는 공예인들의 창작 유통 디자인 전시 등 각종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일본 최고의 공예대학과 공예인양성학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고풍스런 성곽 인근에 있는 21세기미술관은 변화와 혁신, 참여와 연대라는 가나자와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계급적 차별이나 억압, 장벽을 없애고 누구나 즐기며 애용할 수 있는 개방형 예술공간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문화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매년 2월에는 푸드페스티벌이 열릴 정도로 다채로운 먹거리가 있다. 해안가를 끼고 있으며 기름진 농경지가 인접해 있어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이 많고 찻집거리는 전통의 숨결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본 3대 과자 생산지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다양한 화과자를 맛보고 체험도 가능하다. 300년 역사의 양조기술을 자랑하고 백년 이상 된 여관 거리에서는 기모노 차림으로 일본 문화체험에 흠뻑 빠져볼 수 있다.

발 닿는 곳마다 전통의 향연으로 가득하고 자연가 생태가 살아 숨쉬고 있으며 현대인의 삶과 접속하는 생명의 소리로 넘쳐난다. 마치 '오래된 미래'를 만난 것처럼 행복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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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