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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모임이 뼈다귀감자탕 집에서 있었다. 시작한 지 2년 쯤 되다보니 이제는 가능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임이 되었다.

그날도 편하게 늘 보던 친구들이겠거니 하고 진짜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안녕'이라는 인사말과 함께 발을 들여놓고는 빙 둘러보니, 낯선 얼굴하나가 남자애들 사이에 박혀 있었다.

놀라서 좀 주춤하자 성모유치원 밑에 살던 우리 동창 배경환이라며 옆에서 소개를 해 주었다.

새까맣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어머! 반가워" 시간이 지나면 알겠거니 싶어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때 여자애들 고무줄 하는데 어지간히 심술을 부렸던 그 애라느니, 한 여자동창은 자신을 얼마나 못살게 괴롭혔는지 모른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배경환을 상기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에 대한 과거의 이야기가 이렇게 저렇게 다 끄집어 나와도 도통 생각이 나질 않은 채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지금 경주에 살고 있는데 동창회가 있다고 해서 오늘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왔다며, 다시 또 이대로 가야된다는 말을 듣고는 그 정성이 얼마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그저 동창들이 만나는 자리가 한없이 좋기만 해서 그 먼 길을 와 준 이 친구를, 속이라도 채워 보내고 싶은 마음에 살코기가 많이 달라붙은 뼈다귀를 챙겨주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저녁숟가락을 놓자마자 배경환은 친구들 준다고 경주에서 가져온 귤을 여기저기 나눠주었다.

그러면서 그 어린 시절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여기저기 헤매며 악의 없이 말썽부리던 그 표정을 담고 있는 배경환을 보자니, 참 세월의 흐름에도 감추지 못하는 게 이런 것도 있구나 싶었다.

거기다 회비까지 낸다며 지갑을 열길래 무슨 소리냐며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가는 길이 편하길 모두가 함께 나와서 배웅했다.

두 번째 동창모임.

연말이라 두 세 개씩 모임이 겹친 친구들은 회비만 내고 가기도 하고, 몇 달 결석한 친구하나는 분홍색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준비한 곶감상자까지 들고 와 맛을 보였다.

못 온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다음에 얼굴보자는 얘기에, 돌아가면서 통화하고 그러느라 북석거리는 판에, 배경환이 얼굴을 보이더니 들어오지는 않고 남자동창하나를 불러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큰 배 상자를 따라 들어와서는 문턱에 앉아 신발을 벗었다.

어릴 적부터 장애를 가져 걷는 게 불편하다는 얘기를 첫 번째 대면 후에 다른 동창한테 전해 들었다.

친구들 먹으라고 챙겨온 배는 얼굴만 해서 서너 개만 깍아 놔도 접시가 가득 찼다. 거기에 남는 건 하나씩 가져가라고 봉지에 챙겨 놔 주기까지 하였다.

두 번째 보니 초등학교동창이라는 그 끈끈함이 있어선지 훨씬 더 편안했다.

밀렸던 회비에 회장 총무 인사와 인수인계, 동창으로서 당연히 내는 배경환의 회비까지 모든 것들이 정리되는 속에서, 올해 들어 가장 맛있게 먹어보는 배라며 옆에서 시원하게 배를 베어 물던 남자친구하나가 "저 친구 무슨 경환이라고 했지·" "배갖고 온 거 보면 몰라 배경환이지" 한 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서도 배경환 얼굴에 가득 담긴 그 웃음은 정말 올해 들어 먹어본 배중에 최고인 배 맛 같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동창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뿌듯한 자리가 마무리 되고 늦기 전에 출발해야 하는 배경환이 차에 오르더니 "다음에는 회 좀 떠 가지고 올게" 그 말을 넉넉히 담아낸다.

장가는 갔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아직까지 장가안 간 보은남자 동창한테 살그머니 물어보니 이 친구

"배경환! 너 장가갔니·"

"아니"

장가 안 간 보은 친구 씩씩하게 물어보고, 경주 사는 노총각 배경환 씩씩하게 답을 한다.

한바탕 시원한 웃음보가 겨울 찬 공기에 입김을 업고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에 사는 친구가 배경환차에 얼른 올라타더니, 명절인사로 챙겨놓은 곶감선물을 차에 실어준다며 함께 출발을 했다.

대단히 소문날 만큼 성공한 사람도 없이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도 어려운 요즘 세상에 평범하게는 산다는 63회 보은 동창회

다른 지역에서는 모임이 잘 되지 않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보은에서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 친구들이 있어 모임을 끝내고 돌아가는 내 발길에 왜 이렇게 힘이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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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