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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9.02.19 18:40:4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한국천주교의 큰 어른이자 이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인 김수환 추기경이 87세를 일기로 16일 선종(善終)했다.

선종 다음날인 17일부터 김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을 향한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명동성당에서 줄의 맨 끝까지 걸어가는 데만 30분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세종호텔에서 명동 지하철역 출구를 거쳐 명동 상가구역으로 꺽어 들어간 뒤에도 줄은 연결됐고, 다시 U자 곡선을 그리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이어졌다.

18~19일 쌀쌀한 날씨 속에 새벽 6시부터 자정까지 조문행렬은 끊기지 않았다. 이틀간 40만명 이상이 줄 속에서 서 있었다.

두툼한 외투를 껴입고, 털모자와 마스크까지 쓰고 호주머니에 언 손을 집어넣고, 가끔 할머니들은 아픈 다리로 잠시 주저앉아 쉬기도 하면서, 이 많은 사람이 마치 없는 것처럼 행렬은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택시기사, 구멍가게 주인, 건어물 상인, 회사원, 교수, 학생, 무직자들이 섞여 다섯 시간 이상 줄을 서면서, 어느 한쪽 구석에서 소란과 새치기가 없이 짜증과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김 추기경의 빈소가 차려진 명동성당은 스스로 원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시국갈등의 현장이 되곤 했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 계층 간의 반목, 세대 간의 불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도 이 부근에서 경찰과 충돌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 추기경이 선종하신 후 이 곳이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념·계층·종교를 초월한 사랑과 용서, 화해의 '길고 조용한' 추모행렬로 명동의 기적을 이뤄낸 장이 됐다.

김 추기경의 선종을 이처럼 애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종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평생을 그리스도 신앙과 기도 안에서 살며 교회와 세상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민 성자의 삶 그 자체였다.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과 체온을 함께 나눴다.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그들이 기둥처럼 편안히 기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내어준 삶이었다.

김 추기경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를 사목 표어로 했다. 그는 여든일곱 해 신고(辛苦)의 삶을 영위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명제를 가슴에 품고 몸소 실천했다.

교회와 세상을 가르는 울타리를 허물려 노력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깨뜨리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한마디로 김 추기경은 '사랑과 평화의 사도'였다.

일제 침략과 한국전쟁, 군부독재와 민주화 물결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우리 사회, 우리 국민에게 희망의 지표였고 등불이었다.

불의의 권력과 부정한 힘을 날카롭게 비판했고, 종교와 사상을 뛰어넘어 진리와 정의가 바로 서기를 간구했다.

유신독재에 대한 항거, 87년 민주화 운동 당시 명동성장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나를 먼저 밟고 가라"고 외쳤던 분이다. 그러면서 기도와 눈물로 소외받은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김 추기경은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동분서주하면서도 늘 스스로를 낮추는 삶을 살아왔다.

항상 세상을 향한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스스로 '바보야'라고 부를 만큼 어수룩한 표정이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의 미소에서 따스한 인간미를 읽었다.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누구나 다가갈 수 있도록 곁을 열어 주고 보듬어 주며 사제로서 사표(師表)를 보여주었다.

김 추기경은 "나는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면서 사 세요"라고 남은 자 모두에게 숙제를 남기고 영원히 잠들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평소 뜻대로 두 눈을 기증함으로써 실명한 두 사람의 빛을 되찾게 하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떠났다.

이제 육신은 떠나지만 그의 호인 '옹기'처럼 질박하고도 부드러운 자애의 손길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를 닮기 위한 세인들의 '신드롬'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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