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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텃밭에 이른 봄볕이 가득하다. 푸석해진 흙을 한 삽 가득 떠서 뒤집었다. 상큼한 흙냄새와 함께 밝은 햇살아래 드러난 것은 진갈색 흙속의 하얀 풀뿌리들이었다. 봄의 시작이 그곳에 있었다.

 겉으로는 지난 가을에 말라비틀어진 고갱이들 밖에 보이지 않지만 땅속으로는 연노랑 줄기와 새잎을 밀어 올릴 준비가 끝나 있었다.

 저렇게 가느다란 실뿌리들로 인해 텃밭 가득 피어날 온갖 풀과 꽃들을 상상하니 봄이 코앞에 어른거렸다. 올봄은 그렇게 텃밭을 파 엎으며 만났다. 옛날 친구네 텃밭에서 무 구덩이를 파며 캐냈던 그 봄처럼….

 중학교 1학년 때 사귀었던 그 친구에게는 죄를 지은 것 같은 아픈 기억이 나의 가슴 한편에 얹혀있다.

 그와는 쌍둥이 형제마냥 죽고 못 살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번갈아 가며 친구 집에 들락거리며 무엇이든 똑같이 나누려고 했고, 늘 함께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무관심으로 인해 오해와 다툼이 있었고 그 후 서먹해지기 시작했는데, 그걸 되돌리지 못하고 아주 헤어지고 말았다.

 세월이 지난 후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은 그렇게 똑똑하고 정이 많았던 친구가 청년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기 스스로 삶을 버렸단다.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기억의 저편으로 가라앉았나 싶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문득문득 물위로 떠올라 나를 아프게 한다.

 올봄에는 텃밭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쩌면 그와의 인연은 끝난 게 아니라 다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가슴 아픈 인연이 있는 반면 하루하루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인연도 있다.

 요즘 나에게 다가온 제일의 인연은 쌍둥이 손녀다.

 그들이 우연하게 나란 사람을 할아버지라 부르는 인연으로 만나게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수년, 수십 년 전부터 미리 예정돼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를 꼼짝없이 사로잡고도 남을 만큼의 진한 인연의 향기를 그들은 가지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는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비치기도 하고, 그녀의 엄마인 딸의 어릴 적 모습과는 그야말로 판박이다.

 둘 중 한 녀석은 사위를 닮았다. 신기한 것은 아직 두 돌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의 성격과 행동이 사위의 과거를 짐작케 해 준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인연을 만들어 가고, 어떠한 인연으로 나타나게 되는지 그 아이들을 통해 깨닫게 된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앞으로의 인연과 연결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울 정도이다.

 인연의 힘은 보이지 않지만 강하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들이 제 편으로 끌어당기는 힘에 주변 사람들이 맥을 추지 못한다.

 오늘 아침 창가에 이름 모를 새 한마리가 찾아와 한참 동안 노래를 하다가 날아갔다.

 새에게는 아침먹이를 찾고 있었거나, 아니면 친구나 짝을 찾는 일상이었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아침을 선사해 줬다.

 만약 그 시간 늦잠을 자고 있었다던가, 내 마음이 닫혀 있었다면 그 아름다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저귀는 새 한 마리와 그 소리를 인지하게 된 나의 만남, 이런 것이 인연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우리 삶의 순간순간이 인연 아닌 게 없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모두 지나간 인연과 연결된 결과이고, 동시에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다.

 보잘 것 없는 풀포기, 윙윙거리는 작은 벌레, 활짝 핀 꽃 한 송이가 나와의 인연이 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의미심장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수많은 인연들이 가라앉아 있다. 그 인연들을 좋은 인연, 안 좋은 인연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는 아직도 그 인연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옛 친구와의 인연이 지금도 나를 아프게 하는 것처럼….

 아마도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다가오는 인연뿐만 아니라 지나간 인연마저도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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