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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9.30 13:48:02
  • 최종수정2015.09.30 13:48:02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요즘 한국영화가 더 재미있다.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미래의 이야기나 무지막지한 로봇형 인간들의 파괴력보다는 인간미 넘치는 우리영화에 더 끌린다. 특히 어수룩하면서도 유머가 있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한 '황정민'의 캐릭터가 참 좋다. 그의 영화엔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함과 반전의 통쾌함이 있다. 그런데 나이 탓인가· 영화를 보면서 황정민 뒤에서 움직이는 조연들의 연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얄미운 악당이지만 주연 못지않게 열연하는 조연의 연기력에도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부분 주연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주연을 통해 스토리를 풀어간다. 극장을 나서면서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듯 우쭐하게 되는 것도 주연의 강한 이미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연은 배경인 조연이 있어 돋보이고, 조연들의 소소한 이야기로 인해 영화가 꽉 차게 되는 것이다.

비행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면 사람들의 시선은 비행기와 조종사에게 집중된다. 한 번의 비행을 위하여 수많은 조연들의 노력이 필요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 법이다.

항공기 정비사들은 아무리 이른 아침의 비행이라도 한 시간 전까지 비행준비를 마쳐야 한다. 시운전을 하여 엔진과 항공기 기체의 작동상태를 점검한다. 연료차가 와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무장사들은 필요한 미사일이나 총·포탄을 장착한다. 기상장교는 현 기상과 앞으로의 예보를 시간단위로 분석하여 알려준다. 항공기가 움직이는 순간부터 관제사들은 정확한 길을 가는지, 다른 항공기와 충돌하지 않는지 확인하여 안전하게 유도한다. 그 외에도 활주로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넓은 활주로와 유도로를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조그만 나사나 돌과 같은 딱딱한 물체가 없는지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공포탄을 쏘면서 새들을 내쫓는 사람들은 땡볕이나 찬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고 있다. 항공기를 중심으로 마치 시계의 톱니바퀴가 움직이듯 빈틈없는 조연들의 역할이 있어서 안전하고 성공적인 비행이 이루어진다.

그러고 보면 주연이나 조연이나 제각기 맡은 역할의 중요성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다만 주연은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스토리 전개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을 뿐이다. 또한 주연과 조연, 그들을 둘러싼 스텝들 사이엔 제각기 역할을 다하는 '책임'과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조직에서의 책임과 신뢰는 상호보완적이 아니라 인과(因果)의 관계이다. 책임을 다하면 신뢰가 쌓이고, 신뢰가 있으면 책임을 따져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몇 년 전 정비사의 실수로 인해 항공기가 추락하였다. 사고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실수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작은 실수가 치명적 사고로 이어지는 과정엔 적어도 세 번이상의 확인과 점검과정이 있었지만 교묘하게도 그 과정을 여과 없이 통과해버렸다. 조사결과는 커다란 여파를 예고하고 있었다. 바로 책임문제였다. 처음 실수한 실무정비사로부터 감독관, 심지어 항공기를 설계·생산한 분야까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칫 체제전체가 불신감에 휩싸일 위기에 처했다.

결국 2차적 책임이 있던 정비감독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로 이어졌다. 그의 죽음으로 더 이상 문제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짊어지려 했던 것은 정비실수에 대한 책임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그건 억울한 일이다. 그가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조종사와 정비사간의 두터운 신뢰가 깨어지는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은 배우들을 대하는 남다른 시선과 조련법이 있다고 한다. 그는 배우들에게 계약에 의한 각자 역할과 책임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조연이라 할지라도 관객에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전달하는 진정한 주연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와 한 번 인연을 맺은 배우와 스텝은 곧 바로 "봉준호 사단"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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