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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가을이 깊어지면 사람이 그리워진다. 외로워서가 아니라 보고 싶어서 그렇다. 숨겨 놓은 사랑이야기가 없더라도 떨어져 구르는 낙엽위에 겹쳐지는 시詩 구절이 있고, 좌판에 놓인 빨간 홍시를 보면서 스치듯 떠오르는 인연도 있다. 추수가 끝난 들길을 한없이 걷고 싶은가 하면 저녁상에 올라온 매콤한 국 한 그릇에 울컥하기도 한다. 일조량이 줄어들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호르몬 변화가 사람들을 감성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가을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사색에 빠지게 하고 주위를 둘러보게 만들며 따스한 정이 그리워지게 한다. 이러한 증세가 깊어지면 이른바 '가을 탄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내가 가을을 타고 있나 보다. 종일 울적한 기분에 빠질 정도는 아니지만 흐르는 시간이 아쉽고 무언가 허전하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키워주신 분들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늘 가슴에 얹혀 있다. 평생 갚아도 모자랄 만큼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았나 싶다.

사관생도 시절, 퇴교의 벼랑 끝에서 구해주신 스승 한 분은 영영 연락할 길이 없다. 같은 중대의 소속인원들을 단결시키려고 벌였던 일이 중요한 교칙위반 사건으로 번졌을 때였다. 조직을 지탱해 온 규율과 전통이었기에 모든 훈육담당관들이 주동자의 퇴교를 주장했다. 한 개인의 딱한 사정은 바람 앞에 등불 같았다. 하지만 담당중대장이었던 그분은 끝까지 나의 손을 놓지 않으셨다. 한 명의 제자를 구명하기 위해 학교당국의 상관들과 후배장교들까지 일일이 찾아가 설득하였다. 지은 죄는 무겁지만 그동안 보여준 생활태도와 규율을 위반하게 된 과정을 고려했을 때 퇴교는 너무 가혹하다는 뜻이었다. 그분의 열정적인 설득으로 인해 나는 겨우 살아남았고, 힘든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또 한 분의 은인은 비행교관이셨다. 고등비행과정 중 몇 가지 고민과 갈등 속에서 혼자서 뜨고 내려야 하는 솔로비행(Solo Flight)평가를 맞이했다. 평가 비행 전 나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러나 막상 비행이 시작되자 '엉터리'란 말이 듣기 싫어서 온 힘을 다해 주어진 비행과목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죽어라 해도 모자라는 판에 한동안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었으니 정해진 기준을 통과하기는 어려웠다. 조종하는 모습을 뒷좌석에서 찬찬히 지켜보던 교관님은 갑자기 평가를 중단하고 기본적인 조작부터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착륙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혼자의 힘으로 착륙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다. 여러 차례 시도하였지만 교관님의 도움 없이는 정상적인 착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종착륙시간이 임박한 마지막 기회에서 겨우 한 번 혼자의 힘으로 착륙했을 뿐이었는데 교관님은 합격판정을 내리고 말았다. 그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모험 같았다. 교관님은 무엇을 믿고 합격평가를 내렸는지 밤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그 다음날 활주로 통제탑에 계신 교관님의 조언을 받아서 안전하게 착륙을 하였지만 등에 식은땀이 흥건할 정도로 긴장한 순간이었다.

두 번의 위기에서 만약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또는 정확한 규정을 적용하려 했다면 지금 나는 분명히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군인의 길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조종사가 아닌 평범한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리라. 물론 지금의 이 길만이 자랑스러운 길이란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었다는 점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그분들은 현실이 아니라 나의 잠재력을 믿어 주셨다. 나는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살긴 했지만 그 분들에게 직접 감사함을 전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은혜를 갚는 올바른 방법은 내가 후배들에게 그분들과 같은 믿음과 사랑을 전하는 것임을 잘 알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그분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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