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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이 넘은 인생 어떤게 그 분의 희망일까

독자위원칼럼-정해자

  • 웹출고시간2008.12.03 19:59:1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정해자.

홀로계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보석박물관으로 해서 전주비빔밥까지 자원봉사자들이 불편함 없이 입안의 사탕처럼 잘 모시겠다는 다짐을 한 덕인지 무사히 바람을 쐬고 왔다.

한 차 가득 채워서 출발한 차안에서 오랜 세월 풍파에 버티어 낸 그런 분위기로 90을 넘긴 연세가 놀라울 정도의 풍채와 혈색이 좋으신 어머님이 차멀미 때문이라며 맨 앞에 부처처럼 앉으셔서는 내 시선을 끌었다.

보은을 출발해서 어느 정도 차안 분위기가 익숙해지자 마이크를 가지고 각자 '어디에서 온 누구입니다.'라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는데도, 아무말씀 없이 고개 짓으로 못 한다는 표시를 한 채 정갈한 옷차림하나 흐트러짐 없이 또 부처가 되셨다.

그러기를 또 한 참 가는 사이 차 안은 미리 준비해 간 포도주 두 병으로 입맛을 다시며 놀랍게 빠른 속도로 흥겨움이 익을 무렵, 이 어머님께서는 가방 안에서 부스럭거리면서 뭔가를 찾더니 비닐에 꼼꼼히도 매여 있던 것을 꺼내셨다.

플라스틱 소주병에 붉은 기가 도는 것을 내 보이더니 당신이 직접 담은 포도주라며 빈 잔에 따라 주시며 처음으로 말문을 여셨다. 그것도 아주 깊게 울려나오는 목소리로.....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라 두 손으로 정성껏 받아서 한 모금 가까이 대니 소주냄새가 너무 강하고 써서 먹기가 참 힘이 들었다. 간신히 한 모금만 넘기고 담은 정성 때문에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죄송한 마음과 함께 술을 잘 못 먹는다는 것으로 사양을 했더니만 눈도 끔쩍 안하고 그 술을 입안에 넣으셨다.

연이어 두 번을 그렇게 따라 마시더니 그제 서야 드문드문 말문을 여셨다.

남의 집 곁방살이로 혼자 살면서 딸이 가끔 들여다 봐 준다는 말씀과 함께 90이 넘으신 연세라 글은 깨쳤을까 싶어 여쭈었더니 이름자는커녕 전화도 걸 줄 몰라 오는 것만 받으신다는 말씀에 참 가슴이 애렸다.

오랜 세월 어르신들의 한글지도를 해 온 경험이 있어 혹시 그렇지 않을까 싶었는데 까막눈으로 얼마나 풍파가 많은 세상을 사셨을까 우리 세상 잘 만나 편하게 글 배운 사람들이 해야 될 일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어머니가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가야하는데 뭘 써서 내밀어야 돈을 주는지 글씨를 모르니까 그냥 주눅이 들었다고 한다. 내 돈 은행에 넣어놓고도 마음 편하게 못 쓸 바에야 장판 밑에 집어넣어 놓고 깔고 앉아 마음편하게 쓸 걸 후회를 하면서도 맡겨놓은 돈을 일단 찾아야 했기에 궁리한 게 이거였다.

작은 면단위에서 그래도 겉보기에는 문자는 깨우쳤을 거라 보는 시선에 오른팔에 붕대를 둘둘 말아 감아쥐고는 은행에 가서 팔을 다쳐서라는 핑계를 대며 직원의 도움으로 돈을 찾았다고 한다.

결국은 그 한스러움을 이겨내고자 지금은 글 꽃을 활짝 피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누구나 다 아는 가나다라로 한자 一二三四五, 영어ABCDEFG..

그 분들 앞에 서서 대단한 스승인 냥

마트 광고지로 세일하는 상품은 뭐가 있는지 알아보기, 은행에서 돈 찾는 방법, 열무김치 담는 방법을 글로 써 보기, 오늘 먹은 반찬 이름적기 등등......

나들이 이후

함께 찍은 사진들을 다 챙겨서 서랍 속에 잘 보관하고 있다.

목석처럼 굳어있는 그 얼굴에 나는 무엇으로 그 분에게 90넘은 이후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그 고민이 해결이 된다면 따끈한 찐빵에 흰 설탕을 사서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 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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