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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가경 천 둔덕에 민들레꽃 한 송이가 피었다. 된서리가 서설처럼 내린 아침 설핏한 햇살에 몸을 녹이는 모습이 애처롭다. 산모롱이 외딴집 사립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촌로의 미소처럼 적막하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에는 무얼 하다가 들풀마저 수척해지는 이 계절에 이리도 시리게 웃고 있단 말인가.

 늦가을 햇볕를 쬐며 시리게 웃고 있는 민들레꽃 위에 노란 저고리를 입고 배시시 웃던 친구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홀로돼 어린 아들과 친정살이를 했다. 삶의 굽이를, 가파른 고개를 혼자 삭이고 홀로 풀어가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아들이 장성해 가정을 꾸리고 나자 다음에는 자신의 결혼 초대장을 보내왔다.

 의연한 듯 살아온 한 여인의 외로운 그림자가 비로소 클로즈업됐다. 청상과부의 삶이 얼마나 버거웠으면….

 조촐하기는 하지만 결코 허술함이 없는 고급스러운 혼례였다. 신랑의 넉넉한 씀씀이, 기품 있는 말씨, 세련미 넘치는 태도로 보아 백마 탄 왕자가 맞구나 싶어 살짝 부럽기도 했다. 한데 남편과 나이 차이가 지나치게 많이 나는 걸 알고는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몇 년 후 그녀의 이순 잔치에 초대받아 가보니 다복한 6남매의 어머니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의연하게 앉아 있었다. 유순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토종 민들레처럼 하얗다. 남편 자식 5남매는 아버지가 외롭지 않은 노년을 보내면 그걸로 됐다고 했단다. 그런 자식들의 버팀목이 되기까지 척박한 땅에 억척스럽게 뿌리를 내렸으리라. 잎을 키워 둥지를 틀었으리라. 가을 민들레처럼 서둘러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기꺼이 맨몸으로 날았으리라. 그녀의 의지가 희생의 삶이 의좋은 6남매를 둔 화목한 가정을 만들었으리라.

 나도 늦은 나이에 못다 한 염원을 글쓰기에 담았다. 뻐근한 어깨를 두드리며 밤잠을 설치는 날이 부지기수다. 이 간절함은 무엇인가. 어쩌자고 이 열정은 식지를 않는가. 무모한 열정에 눈이 먼저 충혈돼 반란을 일으킨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기를 드는 몸이 야속하다. 생장이 멈춘 땅에 뿌리를 두고 가녀린 꽃대를 곧추세운 채 마지막 생을 불태우는 가을 민들레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 햇살은 남아 있지 않은가. 겨울로 가는 길목을 비춰주는 햇살은 철 지난 씨앗까지도 알뜰하게 익혀보려고 들판을 서성인다. 뒤늦게 맺은 씨앗이 봄 동산을 노랗게 물들이는 꿈을 놓지 않는다.

 오늘은 민들레 잎으로 샐러드를 만들었다. 맛이 괜찮다. 내친김에 김치도 담갔다. 고들빼기김치같이 쌉싸래한 맛이 몸에 좋다니 힘이 나는 듯 하다. 인삼보다 사포닌 함량이 더 많다는 흰 민들레 뿌리를 말려 차로도 음미한다. 이웃집 할머니는 위암인 아들을 위해 몇 년째 민들레를 캐러 다니신다.

 척박한 땅에 뿌리내리고 얼마나 한 인고의 세월을 살았기에 위염을 다스리고 암세포를 죽이고 간을 보호해 줌은 물론 사람의 몸을 치료해 줄까?

 어디 그뿐인가. 어린이들의 동요 속으로, 아낙네들의 봄나물 바구니로, 연인들의 필름 속으로 녹아들어 우리네 삶에 정서를 더해주기도 한다.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다시 가경 천 둔덕을 찾았다. 민들레꽃은 자취를 감추고 씨앗마저도 다 날려 보낸 민머리만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쪽빛 햇볕이나마 쬘 기력도 남아있지 않은 휘인 모습이다. 자식들에게 다 내어주고 바람 빠진 뼈대만 남아 이 병원, 저 의원 찾아다니는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다.

 나도 가을 민들레처럼, 마음이 분주해진다. 겨울이 오기 전에 제대로 여문 꽃씨를 날려 보내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민머리로 남을 마음의 준비는 끝냈다. 이제 보송보송한 씨앗이 누군가의 마음으로 날아가 고운 꽃으로 피어나기만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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