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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열리는 풍경이 있다. 서천 신성리 갈대밭에서의 느낌이 그랬다. 아득한 지평선 그 너머까지 온통 다 갈대밭일 것 같은 광활한 갈대숲이 일렁인다. 고갈되었던 정서가 조금씩 채워지며 어떤 감수성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언제 봐도 갈대는 예의 바르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갈대숲에 미풍이 지나가면 미풍에 미안하지 않을 만큼 작은 흔들림으로 반응해 주고 강풍이 불면 그에 어울리도록 크게 흔들려 준다. 그러면서 자신을 보호하여 뿌리를 내어 주는 법은 거의 없다. 아무리 센바람이 불어도 큰비가 내려도 당차게 뿌리를 지켜내고 있다. 옆 친구와의 결집력과 응집력도 강해서 갈대숲은 나날이 왕성해진다. 갈대는 그렇게 자신을 지킬 뿐 아니라 물가에 뿌리를 내리고 물에서 이물질과 중금속을 제거하는 등 자연 정화처리 방식에 의해 수질을 개선하기도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키를 높이 키워 다른 생명의 바람막이가 되어줌으로써 철새는 물론 다양한 생물들에게 서식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갈대는 흔들려서 갈대다. 잔바람에도 흔들려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린 성정이지만,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그래서 힘을 힘으로 받지 않고 비켜설 줄 아는 지혜가 그들이 온전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일 거다. 끝없이 밀려드는 바람이건만, 얼굴 한 번 붉히는 법 없이 살랑살랑 춤이라도 추듯 바람을 비끼고 또 타고 넘는다. 갈대는 씨앗에 하얀 날개를 달았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그 씨앗을 날려 보내 종족 번식이라는 대업을 완성해 나간다. 갈대에게 '흔들림'이란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자 삶의 원천이었다.

파스칼은 그의 저서<팡세>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다.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그 '생각, 즉 '사고(思考)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가 처한 삶의 유한함을 깨닫고, 그 생각이라는 것을 통해 자기 삶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며, 고로 인간은 위대하다는 것이 파스칼의 논리이다.

그뿐만 아니라 흔들리며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의 폭이 고정된 마인드를 벗어나 다방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의 암시로 이해되기도 한다. 흔들림의 대명사인 갈대에다 여자를 비유하기도 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가 아니라도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닮은 구석이 있긴 하다. 종잡을 수 없는 그 방향성만큼은 어느 정도 닮지 않았던가. '생각하는 갈대'든 '여자의 마음은 갈대'든 이 두 정의가 주목하는 갈대의 특징은 역시 '흔들림'이다.

신경님 시인은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라고 표현했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 그래서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보다.

요즈음 나는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세찬 바람을 만났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편을 놓쳐 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방향도 세기도 종잡을 수 없는 바람에 뿌리까지 흔들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람과 맞서지 않고 비켜서고 타고 넘으며 뿌리를 지켜내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 나를 흔드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나의 조용한 속울음인지도 모르겠다.

갈대숲에 석양이 깃든다. 석양을 머금은 갈대숲이 바람이 이끄는 대로 넘실댄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서로 어깨를 걸고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바람과 노을과 더불어 어우러지고 있다.

참으로 오랜 세월 그에게 기대고 살아왔다. 이젠 내가 어깨를 내줄 차례다. 오늘도 내일도 서로 어깨를 걸고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함께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갈대숲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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