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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대청도를 떠난 지 반백 년이 지나서야 대청도 백령도 여행길에 오르게 됐다. 여행 가방을 싸자니 바닷냄새, 갈매기 춤, 해당화 꽃길, 모래사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히 까나리 방학의 기억이 달콤한 내음을 풍기며 마구 달려든다.

내게 고향과도 같은 대청도는 이웃한 백령도와 함께 까나리가 많이 잡히는 고장이다. 까나리는 성어기가 짧다. 짧은 기간에 잡고 갈무리하자면 일손이 많이 필요해서 아이들의 고사리손이라도 보태야 했다. 농촌에서 모를 심는 시기에 농번기 방학을 했던 것처럼 대청도 에서는 성어기에'까나리 방학'을 했다.

방학하면 우리처럼 고깃배가 없는 집 아이들은 어디든 까나리 막에 가서 일을 도왔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경자네 까나리 막으로 가는 걸 좋아했다. 아침이면 무리 지어 숲속 오솔길을 따라 까나리 막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찔레도 꺾어 먹고, 산딸기도 따 먹으며 재깔거렸다.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줄지어 고래고래 합창도 하고 구령을 붙여가며 씩씩하게 전진하기도 했다.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바닷가 숲속은 온통 아이들 세상이었다.

청색 등에 은빛 배를 드러낸 까나리들이 뾰족한 주둥이를 흔들며 파닥파닥 한 배 가득 실려 오면 선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해묵은 커다란 놈들은 액젓이 적게 나오고 내장 특유의 쓴맛이 있어 삶아 말린다. 10㎝ 내외의 작은 놈들은 젓갈을 담갔다. 그래야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나는 질 좋은 까나리 액젓이 된다. 아이들이지만 일을 척척 잘도 했다. 나도 그물을 흔들며 큰 것을 가려내는 일은 곧잘 할 수 있었다. 매끈매끈하고 차가운 감촉이 지금도 손끝에 파닥이는 것 같다. 일하다가 지루해지면 바다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 물고기처럼 헤엄치며 놀기도 했다. 하루해가 저물면 경자 어머니는 물 좋은 까나리를 한 사발씩 들려주셨다. 그곳 섬에서는 여자아이들은 고기 배에 잘 태워주지 않는데 경자네 아버지는 우리를 배에 태워 가까운 부두까지 데려다주시곤 했다. 우리가 배에서 내릴 때쯤이면 세상이 온통 붉은빛이었다. 하늘도, 넘실대는 바다 물결도, 끼익 날아오르는 갈매기도, 그 속에 내 모습까지도 붉게 물들었다. 우리는 배에서 내리는 것도 잊고 노래를 불렀다. 교가를 부를 때면 경자 아버지도 같이 부르셨다.

'구름 위에 삼각산은 높이 솟아 있고 넓고 푸른 황해바다 우리를 둘렀네. 산 높고 물 맑은 섬에 빛나는 우리 학원 대청교 대청교 영원무궁 만세.'

배에서 내리면 개선장군처럼 달려가 엄마 앞에 까나리 바구니를 내밀었다.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는 날개라도 달리는 기분이었다. 금방 잡아 온 까나리로 국을 끓여 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았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삶아서 널어놓은 까나리가 비들비들 마르면 똥을 발라내고 먹는 달근한 맛도 그리움이다.

그 섬에 주둔해 있던 군인들은 젊은 여성들을 '까나리'라 불렀다. 팔딱팔딱 뛰는 까나리처럼 성향이 활달하고 남성들에게 만만하지 않아서 붙여진 대명사다. 대청도 하면 까나리가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이곳 여행사 이름 중에 까나리 여행사가 있는 것도, 까나리가 섬의 상징이고 대중 속에 녹아든 정서로 자리매김하여서 이리라.

유년 시절의 추억이 예쁜 동화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까나리와 저녁 바다가 사이좋은 친구처럼 손잡고 서서 잃어버린 순수를 자극한다. 내일모레면 꿈에 그리던 내 고향 대청도에 간다. '한국의 사하라'라고 불리는 옥죽동 모래사막을 원 없이 걸어보리라. 대청 국민학고 뒤 모래 산을 넘으면 펼쳐지던 사탄동 해수욕장에서 물개처럼 헤엄도 쳐 보리라.

신이 내린 낙원에서 또 한편의 동화를 데리고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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