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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올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더워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더운 건 처음이다. 낮 기온과 밤 기온은 연일 기록을 경신했다. 광복절이 지났는데도 더위는 꺾일 줄 모른다. 팔순을 넘기신 옆집 어르신은 내 생전에 이렇게 더운 날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폭염은 111년 만에 최고 기온이고 최장 기록도 새로 썼다지 않던가. 기온만 높은 것은 아니다. 불쾌지수는 물론 전기 사용량도 높이 치솟았다. 전기세 부담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만, 더위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까지 생기는 형편이니 살기 위해서는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다는 말에 어찌 참을성이란 잣대를 들이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번엔 태풍이란다. 19호 태풍 '솔릭'은 2012년 태풍 '산바' 이후 6년 만에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강한 바람과 폭우를 예보한다. 준비 없이 맞았다가는 위험하다는 경고가 실시간으로 방송된다. 이미 제주와 전남지역의 광풍과 폭우, 해일의 장면이 보도되고 있다. 폭풍전야에 고요함에 가슴이 조여 온다. 문득 낯에 꼬마들에게 들려준 동화가 떠오른다.

"나는 동글동글 동글이에요. 무엇이든 잘 참아내는 아이예요."

그러자 해님이 말했어요.

"호호호, 이 뜨거운 햇볕을 잘 참아 낼 수 있을까· 쨍~쨍~"

"아이 뜨거워! 뜨거워! 그래도 나는 견디어낼 테야."

동글이는 뜨거운 햇볕을 참아내자 쑥쑥 컸어요.

갑자기 비구름이 나타났어요.

"하하하, 제법이군. 그렇지만 차가운 비도 견뎌낼 수 있을까· 쏴아~ 쏴아"

"앗, 차가워! 앗 차가워! 그래도 난 견뎌낼 테야."

동글이는 파랗게 멍이 들었지만, 차가운 물을 마시며 쑥쑥 컸어요.

이번에는 번개가 천둥을 몰고 왔어요.

"어디 그럼 이 번개님이 나서 볼까. 에잇 번쩍, 우르르 쿵쾅~"

"아이고 무서워, 아이고 무서워, 그래도 동글이는 견뎌내며 쑥쑥 컸어요. 봄부터 여름까지 이렇게 잘 참아 낸 동글이는 뜨거운 햇볕을 받아 속이 빨갛고, 세찬 비를 마셔 물이 가득하고, 번개를 견뎌내서 번개무늬가 있는 커다랗고 맛있는 수박이 되었답니다.

수박 한 덩이가 제구실하려면 얼마나 많은 순간을 참고 견디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수박하면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의 원두막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올해처럼 극심한 더위에는 수박의 진가가 더욱 높아진다. 물이 많고 달고 시원하여 입이 즐겁고 몸이 즐겁다. 게다가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하여 신진대사가 촉진되고 이뇨작용이 원활해져서 성인병 예방과 당뇨의 특효라니 마음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좋은 동화구연가가 되려면 청자를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듣는 이의 마음에 다가가 감동과 공감을 끌어내면 콩이다 팥이다 꼭 집어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지는 게 동화의 매력이니까. 오늘은 동화를 듣는 아이들보다 들려주는 내게 더 큰 깨달음이 당도한 셈이다.

후유~ 다행히 태풍은 강도가 누그러져서 지나갔다. 거의 해마다 강한 폭풍우로 큰 피해를 주는 태풍이지만, 지구 온도를 조절하고 물 부족 현상을 막아주고, 대기 중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것도 태풍이라고 한다. 또한 강과 바다를 휘저어 산소를 공급하고, 플랑크톤을 만드는 등 바닷속 생태계도 풍성하게 만든다니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성난 파도보다 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풍랑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만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뜨거워도 차가워도 무서워도 참고 견디다 보면, 잘 익은 수박처럼 남을 기쁘게 해주는 유익한 존재로 거듭나는 날이 오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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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