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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올해도 산수유, 개나리, 벚꽃이 차례로 봄을 전하고 있다.

'푸른 바다 건너서 봄이, 봄이 와요. 제비 앞장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

내 유년 시절에는 봄이 온다는 것은 곧 제비가 온다는 의미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해 봄에도 제비는 우리 집 대들보에 집을 짓고 새끼를 길렀다. TV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 제비 가족의 지저귐은 마냥 즐거운 음악이었고 평화의 메시지였다. 한창 새총 놀이에 재미 붙인 동생이 새총으로 장 항아리를 깨뜨리더니 급기야는 막 날기 시작한 제비까지 쏘아 떨어뜨리는 사고를 냈다. 파르르 떨면서 죽어가는 제비가 가여워 동생과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놀부에게 내렸던 재앙이 올 것 같은 두려움에 섬뜩하기도 했다. 엄마는 나물 바구니에 조심스레 제비를 담고 철퍼덕 앉아 울고 있는 동생 손을 이끌고 뒷산으로 올라가셨다. 나는 큰언니가 예쁘게 수놓아 만들어 준 새하얀 손수건을 찾아 들고 따라갔다. 양지바른 곳에서 걸음을 멈춘 어머니는, 동생에게 새총도 함께 묻어주면 제비 가족이 안심할 거라고 하자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손수건을 내밀자 어머니는 제비가 고마워할 거라며 곱게 싸서 묻어 주었다.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서랍 속에 간직해 두었던 손수건이 제비의 수의가 된 셈이다. 우리는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세워주고 제비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때 어머니는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법을 가르치신 것이었다. 또한, 자식의 마음에 남게 될지도 모를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 위로와 치유를 주셨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며칠 후 제비 가족은 서둘러 떠나는 눈치였다. 진심을 담아 '미안해. 용서해줘'라는 말을 수없이 건넸으니 제비도 용서해 주지 않을까· 제비가 우리를 용서하고 다음 해에 다시 오리라는 기대 반,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 반으로 다음 해 봄을 기다렸다. 그러나 우리는 제비의 마음을 끝내 확인하지 못한 채 아버지 전근으로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제비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나는 궁금한 것도 많았다. 새들은 사람을 피해 높은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틀거나 깊은 풀숲에 몰래 알을 낳는데 어째서 제비는 사람 사는 집에 들어와 겁도 없이 그것도 버젓이 대들보에 집을 짓고 새끼까지 치는지 신기하고 궁금했다. 그냥 믿고 목숨까지도 맡기면 보호를 받게 된다는 지혜를 어떻게 터득했을까. 그래서 제비는 영물로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또 궁금한 건, 어미 제비가 먹잇감을 물고 둥지로 돌아오면 새끼들은 저마다 입을 벌리고 먼저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런데 어미 제비는 어떻게 먹이를 준 녀석과 주지 않은 녀석을 구별하고 고루 먹이냐는 문제였다. 요즘에야 안 일이지만 어미 제비는 주둥이를 제일 크게 벌린 녀석에게 먹이를 물리면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배고픈 척도에 따라 입 크기가 달라지니 그냥 입을 크게 벌린 녀석에게 먹이를 주면 되었다. 그렇다면 요즘 좀처럼 제비를 볼 수 없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급격한 도시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제비의 먹잇감인 벌레가 줄어 옛날엔 몇 분 간격으로 먹이를 물어왔지만, 지금은 수십 분 간격일 수밖에 없어 먼저 먹은 녀석도 이미 소화가 다 되어 입을 크게 벌리니 어미 제비가 헷갈려 골고루 먹일 수가 없지 않은가. 신호 체계에 혼선이 생겨 무엇이 가짜 정보이고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어 못 오는 건 아닐까.

처마 밑에서 제비가 지저귀던 평화로운 시절이 마냥 그립다. 어떻게 하면 제비가 다시 찾아와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지금도 눈감으면 제비의 수의가 된 하얀 손수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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