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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자동차의 정지선에 있으려니 옆 차량에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비틀즈의'예스터데이(yesterday)'이방인의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의 노래처럼 무척 친숙한 선율입니다. 이 음악의 첫 소절이 흘러나오면 자동으로 옛 기억이 소환됩니다. 특히 이 곡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하죠. 할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울지 마라. 꽃이 피는 날이 있으면 언젠가는 지는 날도 있다. 사람의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네가 나를 기억하는 그 순간, 난 다시 반딧불처럼 살아날 거야.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난 네 곁에 있을 거란다."

어린 손자는 늘 할아버지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기에 돌아가신 후, 전기 스위치가 내려간 것처럼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이 갑자기 꺼져버린 듯한 허망함은 이루 형용할 수 없었죠. 커다란 나무처럼 언제나 곁에서 인자한 미소로 맞이해주던 할아버지의 부재는 충격이었어요. 네가 기억하는 한,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할아버지의 그 말은 특별한 힘을 발휘해 슬픔의 농도를 희석시켜주었거든요.

그때 절묘하게도 담 너머 이웃집에서 음악이 들려왔어요.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노래가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였죠. 순간 음악과 결합된 할아버지의 말씀은 신비로운 힘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영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일 뿐, 결국 한 공간에 해와 달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죠. 그렇게 막연하지만 죽음은 이별이며, 삶은 만남이라는 도식적인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이 느껴졌던 겁니다.

음악은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어떤 형태로든 남습니다. 귀에 익숙한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잠시 선율에 묻혀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한 장면에 빠져듭니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마술처럼 되살아납니다. 누군가와 함께 들었던 그 선율에 공간과 사람을 담아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었던 거죠. 까마득한 20대 젊은 시절 드나들었던 커피숍'이화'가 생각나고, 부산 남포동의 이름 모를 카페에서 들었던 프랭크시나트라의'마이웨이'가 자동으로 재생됩니다. 마치 최면에 빠져들어 과거의 일들이 무의식의 세상에서 다시 낡은 필름에 담겨져 영상으로 살아나는 겁니다.

음악은 시공을 초월해 공유할 수 있는 예술입니다. 불과 짧은 시간에 음악은 풍경을 채집해 가슴에 담아놓죠. 내면의 어느 곳에 담겨져 있던 음악은 울창한 대숲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깊은 밤의 고요 속으로 밀어 넣어 사색에 잠기게도 합니다. 때로 음악은 마음을 위로하고 지나간 생을 더듬게도 만듭니다. 어쩌면 음악은 사람에 스며들어 감성을 먹고사는 생명체처럼 느껴집니다. 사람은 죽지만 음악과 세월은 남죠. 세월의 나이테 속에 켜켜이 쌓여 사람의 흔적은 음악처럼 물결로 새겨져 있어요. 그렇게 음악은 역사가 되고 예술이 되고 삶이 되며 하나의 점으로 우리 숨결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과거 LP판은 항상 오른쪽으로 돌아가죠. 시간의 흐름과 같이 보조를 맞추며. 그 시간에 얹어진 기억의 조각들은 음악이 흐르면 다시 재생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에는 묘한 생기(生氣)가 담겨 있어요. 사람은 가고 없어도 음악은 영원불멸의 생으로 남아있으니까요. 증발되어 버린 과거의 시공간들을 다시 재현시켜 주는 것에 음악만한 것이 있을까요. 음악은 과거와 현재로 분절된 인간의 삶에 균형을 맞추어 줍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박인희의 이 나지막한 노래에서 잊었던 사람이 되살아납니다. 그때의 사람이 지금 실물로 존재할 수는 없지만, 그 눈동자와 입술의 감촉을 음악이 복원시켜 줍니다.

오늘은 처서(處暑)입니다. 높아진 하늘이 폭염의 독기를 해제시켜 대기는 투명해지고 쓸쓸한 가을의 옷자락이 언뜻언뜻 보입니다. 가슴에 서늘한 물결로 번지는 선율이 듣기 좋은 절기가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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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