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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붕-괴산출생' 학계 논문도 공식 확인

충북일보 4월 기사보도와 거의 같은 내용
가계 李會正-李錫宇- 李洛儀 순으로 일치
몰락 발단도 '대원군-명성황후' 갈등 비슷

  • 웹출고시간2015.07.27 14:17:22
  • 최종수정2015.07.27 19:44:42
[충북일보]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2인자였던 이기붕(李起鵬·사진)이 1896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에서 태어났음이 국내 역사학계의 공식 논문으로도 처음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이기붕 가 선대 가계의 몰락은 본보가 보도했던 대로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구부(舅婦)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거듭 밝혀졌다. 구부는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일컫는 표현이다.

충남대학교 사학과 손연하(孫煙霞·박사과정) 씨가 얼마전 한국근현대사학회(회장 박걸순 충북대교수)가 발행하는 『한국근현대사연구』 72집에 「리기붕의 성장과정과 정치기반 형성(1896~1953)」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이기붕은 1896년 12월 20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에서 부친 이낙의와 모친 송정현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후 1898년 서울로 이주하여 종로구 사직동에서 성장하였다"(287쪽)고 밝혔다.

그는 또 "이기붕은 효령대군 16대손으로 그의 가계는 대대로 높은 관직에 오른 명문가였다. 이기붕의 증조부 이회정은 예조판서에 올랐으나 1882년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의 상사를 발표하였던 일로 1883년 처형되었다"고 서술했다.

앞서 본보는 올 4월 4·19 특집기사(4월 17일자)를 다루면서 중원대 이상주 박사의 주장,『조선왕조실록』, <동아일보> 1960년 4월29일자 등을 종합해 거의 같은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이 박사의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가 이기붕의 출생지"라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일반에 알려졌으나, 이회정(증조부)-이석우(조부)- 이낙의(부친)로 이어지는 이기붕家의 선대 가계 확인은 충북일보의 이날 보도내용이 처음이었다.

다만 증조부 이회정의 처형으로 촉발된 이기붕 가의 몰락에 대해 손씨의 논문은 '명성황후의 상사를 발표하였던 일'이라고 서술했고, 본보는 '흥선대원군파로 몰리면서'로 파악하였다.

두 주장은 동일한 사건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사실 관계는 충돌하지 않고 있다. 1882년 차별대우에 불만은 품은 구식군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명성황후는 충북 감곡·노은면 등을 옮겨다니며 피신했다.

권력을 되찾은 흥선대원군은 며느리를 찾는 둥 마는 둥 시간을 지체하다가 명성황후에 대한 장례식, 즉 국상(國喪)을 명령하였다. 이때 흥선대원군의 지시를 따라 국상준비를 발표한 인물이 당시 예조판서이자 이기붕의 증조부인 이회정이다.

"의대를 가지고 권도(權道)로 장례를 지내는 문제에 있어서도, 설사 거행하라는 명을 받았다 하더라도 마땅히 시종 반대의견을 올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일반 관례의 절차를 따르는 것처럼 여기며 문득 안을 마련하여 반포함으로써 결국 대소 신민들로 하여금 소복을 입게 하였습니다."-<고종실록 19년 9월 24일자>

인용문 가운데 의대는 명성황후가 입던 옷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흥선대원군이 실종을 핑계로 옷만 가지고 며느리 장례를 치르려했음을 보여준다.

흥선대원군의 이같은 의도는 설령 명성황후가 살아 있을지라도 다시는 정치에 대한 미련을 갖지 못하도록 하려는 고도의 계산이 담겨 있었다.

한편 이기붕 출생지가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임이 거듭 확인됨에 따라 추가 고증을 거쳐 출생지로 여겨져온 '299번지'에 표지석이라고 설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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