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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청주목사' 권서봉, 한양으로 진격하다 노적

1728년 무신란

  • 웹출고시간2015.05.05 13:59:27
  • 최종수정2015.05.05 13:59:27

조혁연 대기자

[충북일보] 경종의 급서하고 그의 배다른 동생인 영조가 즉위하자 전국에서 상소가 빗발쳤다. 이들 대부분은 영조에 호감을 갖지 않은 세력인 소론과 남인계열의 당색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이중에는 권서봉(權瑞鳳·?-1728)이라는 인물로 있었고, 그는 이 상소로 인해 유배를 가야 했다.

'임금이 오두석과 이삼령 등의 상소를 읽도록 명하고 전교하기를, "흉악하고 참혹하다. 저 무리들의 흉악한 상소가 어찌 모두 자기 마음에서 나왔겠는가. 국문할 필요가 없다. 이덕배·오두석·이삼령은 섬으로 귀양 보내고, 이덕표·권서봉(權瑞鳳)·최선·정전·이가운은 먼 곳에 귀양 보내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영조실록 1년 3월 26일자>

권서봉의 유배생활을 그리 길지 않아, 무신란 1년 전인 영조 3년(1727)에 해배됐다. '을사년 이후 이명의는 북변으로 귀양가 있었고 권서봉도 또한 근읍(近邑)으로 귀양가 있었다. 그런데 정미년에 이르러 이명의는 호남으로 이배(移配)되었고 권서봉도 잇따라 방한(放還)되었다.'-<영조실록 4년 4월 29일자>

1872년 안성군지도

인용문 중 '근읍'은 말 그대로 가까운 읍, 그리고 '방한'은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을 말한다. 그러나 권서봉은 마음의 칼을 갈고 있었고, 이인좌가 이를 놓칠리가 없었다.

이인좌는 사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로 권서봉을 포섭했고, 그에게 경기도 안성 일대의 모군 임무를 맡겼다. 그 결과, 비교적 큰 규모인 '안성장날 사람만큼'의 반란군이 모군됐다. 반란군 한 명인 박상순(朴尙淳)이 체포된 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적이 군사를 양성(陽城)에 모아 소를 잡아먹고, 군사를 두 패로 나누어 한 패는 진위로 가고, 한 패는 평택으로 가서 두 고을 수령을 모살하고, 곧이어 청주(淸州)로 향하였는데, 그 숫자는 안성(安城) 장터 사람만큼 되었습니다."-<영조실록 4년 3월 22일자>

이인좌는 1728년 청주읍성을 점령한 후 곧바로 자신의 참모들을 주변 군현목의 관리와 군사 지도자로 임명했다. 이때 신천영이 충청도 병마절도사(일명 병사), 그리고 권서봉은 지금의 청주시장에 해당하는 청주목사에 임명됐다. 이때 청주목민에 대한 회유·위무 활동도 함께 이뤄졌다.

'이인좌가 자칭 대원수라 위서(僞署)하여 적당 권서봉을 목사(牧使)로, 신천영을 병사(兵使)로, 박종원을 영장(營將)으로 삼고, 열읍(列邑)에 흉격(凶檄)을 전해 병마를 불러 모았다. 영부의 재물과 곡식을 흩어 호궤하고 그의 도당 및 병민으로 협종한 자에게 상을 주었다.'-<영조실록 4년 3월 15일자> '호궤'는 음식물을 나누어주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인좌의 관료는 반란군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정부군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가짜 충청도 병마절도사'이고 '가짜 청주목사'였다. 때문에 《영조실록》은 직함 앞에 위칭(僞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오명함이 이끄는 정부군이 승리를 거듭, 반군들을 '큰 새끼로 고기 꿰미 엮듯이'(영조실록 4년 3월 24일자) 생포하는 가운데 가짜 청주목사 권서봉 역시 그 직함이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청주목사이면서 청주를 다스리지 않고 이인좌를 따라 한양으로 진격하다 죽산에서 사로잡힌 후 그해 3월 28일 노적됐다. 노적은 본인은 사형에 처하고 처자까지 연좌시켜 같은 형에 처하며, 아울러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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