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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2인자 이기붕, 괴산 청천 출생 맞다

충북일보 확인…19일 4.19혁명 55돌
'박마리아 전기'· 당시 동아일보 등 뚜렷하게 기록
증조부 이회정, 고종에게 사사되자 청천으로 낙향
7살때 부친잃고 권좌올랐으나 끝내 가족 집단자살

  • 웹출고시간2015.04.16 19:46:15
  • 최종수정2015.04.16 19:46:15
[충북일보]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2인자 였던 이기붕(李起鵬·1896-1960)의 출생지는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가 맞고, 또 그가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증조부 이회정(李會正·1818-1883)의 몰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네이버 인명사전,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 대부분의 사전은 이기붕의 출생지를 서울이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이에 비해 중원대 이상주 박사 등 괴산지역에서는 구주소로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 299번지'가 출생지라고 주장해 왔다.

이기붕의 마지막을 보도한 동아일보 1960년 4월 29일자 기사.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에서 태어났다고 기사화했다.

이와 관련해 본보가 1960년 4.19혁명 당시의 각종 자료를 검색한 결과, 동아일보가 이기붕의 출생지와 가계를 장문으로 기사화했고 이는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 1960년 4월 29일자는 '李起鵬씨의 人生航路' 기사에서 '만송 이기붕씨는 4229년 12월 20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그의 할아버지 李錫宇 진사가 몰락된 권속을 이끌고 낙향한 곳이었다. 그는 7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품에서 가난에 시달리며 고난많은 어린시절을 보냈다'라고 보도했다.

이기붕의 할아버지가 청천으로 낙향한 것은 증조부 이회정이 고종으로부터 사사된 것과 관련이 있다. 고종실록에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

이보다 하루 앞선 4월 28일 새벽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자 장남 이강석(李康石·이승만의 양자)은 경무대에서 친부모 이기붕과 박마리아, 그리고 동생 강욱을 권총으로 집단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

본보가 동아일보에 등장하는 '李錫宇'를 각종 사료를 통해 역추적한 결과, △이석우는 이기붕이 조부이면서 진사시에 합격했고 △아버지는 이낙의(李洛儀)이나 이기붕이 7살 때 세상을 떴으며 △그리고 증조부는 고종 때의 대신 이회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회정은 한성부 판윤(지금의 서울시장), 강원도관찰사 등을 지낸 고위 관료였으나 흥선대원군파로 몰리면서 1893년 고종에 의해 사사됐다.

"비록 저들의 고약한 마음은 죽음을 받더라도 죄가 남음이 있다는 것을 응당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이다. 죄인 조병창(趙秉昌), 조우희(趙宇熙), 이회정(李會正), 임응준(任應準)은 모두 사사(賜死)하라."-<고종실록 20년 4월 29일자>

이회정이 사사되자 조부 이석우는 지금의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로 낙향했고, 이기붕은 그 이후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기붕의 나이 7살 때 부친 이낙의가 급사하면서 그는 상경하기 전까지 매우 궁핍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1960년에 간행된 '서울 50년사'도 이기붕에 대해 "이기붕은 1896년 충북 괴산에서 출생했다. 효령대군 직계후손으로 명문거족이었으나 증조부가 사약을 받고 낙향한 후 가세가 기울었고 특히 7세 때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매우 어려운 소년기를 보냈다"고 적고 있다.

'박 마리아 전기'도 이기붕을 언급,"남편 이기붕은 1896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후산리에서 출생했다. 이기붕은 역시 몰락한 양반가의 독자로 태어나 과부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라고 기록했다. '후산리'는 '후평리'의 오기(誤記)인 것으로 보인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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