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피플파워 - 진천 출신 SK하이닉스 장성춘 경영지원실장

"내가 아닌 국가를 위해 근무하라"
수재소리 듣던 학생…30년간 한우물
1월부터 SK이노베이션 전무로 영전

  • 웹출고시간2013.12.22 20:07:36
  • 최종수정2013.12.22 20:07:36
"내가 아닌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나아가 회사가 아닌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다소 생뚱맞은 소리다. 개인의 가치가 더욱 중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고리타분한 철학을 얘기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SK하이닉스 장성춘 경영지원실장(상무)과의 인터뷰에서는 회사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진하게 느껴졌다.

장 상무는 내년 1월 1일부터 SK그룹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 SHE본부장(전무)으로 영전한다.


장 상무는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에서 태어났다. 당시 농협에 근무했던 아버지 때문에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성장했다.

2남 4녀 중 4째로 태어난 장 상무는 초·중학교 시절 수재 소리를 곧잘 들었다.

진천 상산초를 졸업할 때 전체 300명 중 2등으로 졸업했다. 이어 진천중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전체 800명 중 1등으로 졸업했다.

청주고에 진학해서 다소 흔들렸다. 시골에서 수재소리를 듣던 학생이 도시로 나왔을 때 느끼는 어려움은 비슷했다. 여기에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큰 충격에 빠졌다.

흔들리던 고교 시절, 장 상무는 술을 먹어보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고 3학년부터 정신을 차렸다. 장 상무는 한때 방황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뒤늦은스퍼트를 통해 1977년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신군부의 서슬퍼런 혼란기인 1980년 7월 연세대 3학년 재학 중 그는 입대를 선택했다. 병과는 전차수리병, 이때부터 그는 엔지니어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장 상무가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는 울산 CLX 콤플렉스(유공)다. 그는 이곳에서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울산 POSM 공장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후 1991년에는 회사의 배려로 1년 간 일본 연수를 다녀왔다. 이어 1994년에는 사장실에서 보좌진의 1명으로 일했다. 회사 전력의 중심에 진입한 것을 의미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엄습한 1998년 2월 그는 울산 CLX로 다시 이동했다. 그 곳에서 설비·유지보수 업무를 맡아 처리하면서 메인테넌스(Maintenance), 즉 석유설비실장 업무를 충실하게 이행했다.

장치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사고방지다. 사고방지를 위한 설비·유지보수 업무가 회사 내에서 중책으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 상무는 지난해 3월 경기도 이천 소재 SK하이닉스 제조지원실장으로 옮겼다. SK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한 뒤 주요 임원을 그룹에서 파견한 시기에 그 역시 하이닉스 주류의 일원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경기도 이천에서 제조지원실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지난 2월 20일 청주사업장 경영지원실장, 즉 주재임원으로 이동해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을 떠났던 그가 37년 만에 대기업의 주재임원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 했다.

주재임원으로 6개월 간 근무했던 장 상무는 지난 8월 26일 경기도 이천과 청주사업장을 총괄하는 경영지원실장을 맡았다. 이천과 청주의 환경안전과 본사 CR(대외협력) 업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SK그룹 핵심멤버 중 한 명은 그는 내년 1월부터 SK이노베이션 전무로 이동한다. 그만큼 장 상무의 가치는 SK그룹 내에서 최고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장 상무는 "고향 청주에서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느꼈다. SK그룹도 청주 하이닉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우리 지역의 투자를 확대시키기 위해 다른 지역 투자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장 상무는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승진하고 롱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적네트워크도 매우 중요하다"며 "회사와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면 누구든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김동민기자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