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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성, 세종특별시 전동면 운주산성 확실"

백제부흥사 연구 21년, 음성출신 최병식 박사
백제 몰입하다 보니 출판사 이름도 주류성
옥천 구진벌에서는 매년 성왕 위령제 지내

  • 웹출고시간2013.12.09 19:17:29
  • 최종수정2013.12.09 19:17:29
충북 음성군 원남면이 고향인 최병식(61·사진) 씨는 21년째 백제사, 그것도 백제부흥 운동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따라서 운영하는 출판사 이름도 백제부흥 운동의 마지막 장소의 하나로 비정되는 '주류성'으로 했다.

백제부흥 운동이 벌어졌던 곳은 주류성과 임존성 등 두 곳으로, 이중 주류성이 위치에 대해서는 서천군 한산면과 세종시 전동면 운주산성 등의 설이 제기돼 있다.

그러나 그는 운주산성이 주류성이고, 백제 부흥군을 이끌었던 왕자 부여풍은 운주산성에서 공주 방향으로 3㎞ 정도 떨어진 비암사에 머물렀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이같은 확신하에 벌써 20년째 운주산성에서 백제 마지막 의자왕의 원혼을 달래는 고산제를 지내오고 있다.

☞최병식은 누구

- 1951년 충북 음성 원남면 출생.

- 76년 한양대 전자공학과 졸업.

- 92년 운주산성 일대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근거지인 주류성 발굴작업 시작. 주류성 출판사 설립.

- 97년 운주산에 백제 부흥군을 위한 고산사를 세움.

- 03년 대한문화재신문 발행.

- 06년 백제부흥을 주제로 박사학위 취득.(상명대 대학원 사학과). 계간지 '한국의 고고학' 창간.

- 현재 출판사 주류성 대표. '한국의 고고학' 발행인. 운주문화연구원 원장.
- 운주산성을 백제부흥 운동의 근거기 하나인 주류성으로 보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일본서기는 주류성에 대해 '백강에서 가깝고 농사짓는 땅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돌 많고 척박해 농사지을 수 없는 곳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운주산성이 이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단재 신채호 선생도 '주류성은 연기군에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 주류성과 인연을 맺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지난 1992년 운주산에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비문을 보게 됐는데, 거기에는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인 주류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지만 그 정확한 역사를 알 길이 없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순간 온몸에 전율 같은 것을 느꼈지요. 충청도민은 백제의 후예들 아닙니까."

- 고찰 비암사도 주류성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거리상 다소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요.

"3㎞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 정도면 멀리 떨어져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백제부흥 운동을 이끌었던 왕자 부여풍은 비암사를 거점으로 활동했고 운주산성은 그것의 입보산성으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백제 불비상(佛碑像)이 비암사에서 제작된 것도 이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 의자왕과 백제 부흥군에 대한 위령제를 매년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제를 올릴까요.

"지난 1997년 자비로 운주산에 백제 부흥군을 위한 절인 '고산사'를 세우고, 그 어귀에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백제가 완전히 패망한 것으로 기록된 10월에 '고산제'를 지내고 있는데 금년이 20년째였습니다."

- 의자왕 이외에 성왕 위령제에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심정으로 임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현재 옥천 군서면 구진벌에는 성왕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고, 매년 한번도 빠짐없이 옥천지역 향토사학자들과 위령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백제 성왕도 의자왕과 마찬가지로 한을 간직한 채 죽어간 왕이죠."

- 앞으로 계획도 소개해 줄 수 있나요.

"백제 역대왕중 원한을 간직하고 죽은 왕이 또 한 명 있습니다. 바로 개로왕입니다. 고구려 남진정책 때 장수왕에게 희생당한 임금이지요. 그 분에 대한 위령의식도 곧 시작한 생각입니다."

최 박사는 그동안 백제문고 수십 권을 완간했고, 관련 고고학 서적도 2백여종 가까이 발간했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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