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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3.06 14:07:3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국가보훈처는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박노규 육군 준장(1918년3월14일 ~ 1951년 3월 3일)을 선정했다.

박노규 준장은 1946년 11월 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 홍천 주둔 제6사단 제2연대 부연대장으로 재임하던 중 6·25전쟁을 맞게 되었다. 임관 후 첫 전쟁이었지만 박노규 준장은 춘천 및 홍천전투, 강릉 전투 등에서 활약하며 적 800여 명을 격멸하는 등 다양한 무공을 세웠다.

전투지휘도 우수했지만 박노규 준장이 진정 빛났던 것은 전투 지휘 중 전사한 동료의 시신을 업고 후퇴하거나, 적군 시체 1천여 구를 묻어 주는 등 따뜻한 인간애를 발휘한 것이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서 그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인간애를 실천했던 것이다.

특히 이화령-문경 전투는 한국 전쟁 초·중인 7월 13일부터 시작된 조령과 이화령의 싸움이 7월 17일에 영강선(문경 남쪽의 낙동강 지류) 방어로 매듭지어지기까지의 전투다. 이화령은 충주에서 문경과 점촌을 거쳐 상주에 이르는 요충지로 만일 이곳이 돌파된다면 낙동강 주변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 까닭에 아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화령 전방의 633고지를 방어하던 제2대대와 제3대대는 각종 포병의 지원 아래 짙은 안개를 이용해 돌격을 강행, 적과 백병전을 전개하였으나 적병보다 수가 적어 이화령 쪽으로 후퇴하게 되었는데, 박노규 준장은 633고지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동쪽 능선을 따라 역습을 감행, 후퇴하던 인접대대의 병사들도 합류토록 했다. 그 결과 633고지 일대에서 혈투를 벌이던 제2대대가 퇴각하는 적을 차단함으로써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박노규 준장은 최전선에서 부하들을 독려하며 함께 싸우는 지휘관이었다. 1951년 3월 3일 일월산전투에서 벌어진 북한군 패잔병 소통 작전에서 전투를 독려하다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공적을 기려 1951년 4월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전장에서 목숨을 다해 전우의 시신을 구해낸 것과 적군의 시신 1천여구를 직접 묻어 주는 등의 모습은 단순히 부대를 잘 이끌고 전장에서 지휘를 잘한 것으로만 인정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 역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박노규 준장의 깊은 마음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오늘에 되새겨 봐야 한다.

충주/ 김주철기자 kimjc@cb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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