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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단풍도 끝물이다. 얼었던 대지에 새싹 돋고 꽃피던 춘삼월이 엊그제 같은데 녹음으로 가득하던 여름은 가고 황금물결로 넘실거리던 가을도 저물고 있다. 붉게 물든 단풍은 하나 둘 떨어지고, 은빛 물결의 억새밭이 맑은 햇살에 바스러진다. 바지랑대로 홍시를 따는 촌로의 구릿빛 얼굴 사이로 하얀 웃음이 넘쳐나고 겨울양식 준비하는 다람쥐는 오물조물 정겨우며 코스모스 꽃길은 고추잠자리와 함께 나풀거리니 가을은 시인의 계절이요 생명의 낙원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곳간이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산을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어디 산 뿐이던가. 요즘은 올레길, 둘레길, 산막이옛길 등 산길 들길 골목길을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때로는 오지게 넓고 넓은 산하가 온통 사람들의 물결이고 주변의 주차장과 도로는 차량으로 빼곡하니 인간의 욕망에 대자연이 상처입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서울 북한산의 탐방객이 매년 2천만 명이나 다녀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인이 얼마나 산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알 수 있다. 청주의 상당산성, 청원의 작두산을 찾는 관광객도 매년 50만 명은 족히 되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이처럼 산길 들길을 찾아 등산을 즐기고 걷기 신드롬에 빠져 있는 것일까. 서양 사람들은 가까운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휘트니스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또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좋은 작품을 보며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공연을 즐기기도 한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고단하고 눅눅하며 막막하기까지 한 삶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자신들의 삶과 문화를 디자인하는 역량보다도 지나치게 감정에 몰입되거나 이 때문에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 문화살롱이나 문화아지트를 만들고 이곳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거나 인간의 서정을 호흡할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 게다가 미래가 불확실하고 정치적인 혼란과 과도한 경쟁사회가 주는 정신적인 상처가 깊으니 대자연 속에서 심신을 수련하려는 것이다.

산을 오르고 길을 걷다보면 항상 즐거움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트레킹은 고되고 힘겨운 여정이 뒤따르게 마련이고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오르려 하느냐"며 등을 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있는 폼, 없는 폼 다 제다 보면 멋 부리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고 자칫 산악사고로 이어지곤 한다. 어디 이 뿐인가. 하도 많은 사람들이 똑 같은 길을 걷다보니 멀쩡하던 길도 깎여 나가고 산림까지 훼손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하니 대자연은 인간의 욕망과 이기利器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인간과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 없는 길을 파고 뚫고 헤집어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앞동산 뒷동산 골목길 호숫가 등 지척에 있는 대자연의 속살을 엿보고 호흡하며 그 곳에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혼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마음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이름하여 '즐거운 소풍길'이다. 온 가족이 도시락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소풍길에 오를 수 있는 길이면 좋겠다. 사랑하는 연인과 손잡고 자연이 주는 영롱함과 골목길의 서정과 사람들의 스토리를 한 바구니 담아오면 또 어떤가. 학생들에게는 보물찾기와 장기자랑의 흥미로운 놀이터가 되고, 여행객에게는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을 호흡할 수 있는 멋진 추억의 공간이며, 방랑자에게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휴식처가 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즐거운 소풍길을 발굴하고 그곳의 역사 문화 생태를 하나로 묶는 스토리텔링 작업을 해야 한다. 눈만 즐겁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독창적인 맛집 멋집을 개발해 흥미와 추억거리를 만들면 좋겠다. 이제 상상을 디자인하고 현실의 본령으로 들어가자. 즐거운 소풍길을 만들기 위한 생각의 탄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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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