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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9.11.04 18:06:5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군대 졸병 시절이었다. 이른바 작대기 하나 달고 열나게 '뺑뺑이' 도는 졸병은 언제나 서러웠다. 밥을 먹어도 배가 고팠고, 잠을 자도 졸렸으며, '빠따'를 맞고 나도 언제 다시 집합 당할지 몰라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밤낮으로 '빠따' 칠 핑계 거리를 찾아내는 작대기 세 개짜리 중고참들은 "고참은 하늘이다"를 복창시키며 틈만 나면 패고 또 팼다. 왜 맞는지, 왜 패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알 필요도 없었다. 고참들이 두들겨 패면 졸병들은 그저 몸을 대주는 게 임무일 따름이다.

작대기 네 개 중에 경상도 고참이 있었다. 우리 부대로 전입신고를 한 입대 동기 중 충청도 출신은 나 하나였다. 경상도 고참이 내게 명했다. "너는 앞으로 내가 부르면 '예'라고 대답하지 말고 '멍'이라고 대답하라"고. 그 이후 내 별칭은 '멍'이 됐다. 동작이 느리지도 않고, '군인의 길'도 잘 암송하고, 고문관과는 거리가 먼데도 유일한 충청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상도 고참이 부르면 "멍!"하며 달려가 부동자세를 취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제대 말년의 경상도 고참은 히죽 히죽 웃으며 아주 재미난 놀잇감을 개발해 낸 듯 만족해했다.

한 번은 취사장 입구 뒤쪽에서 경상도 고참이 부르는 소리를 일부러 못들은 체 했다가 걸려들어 "니, 정말 못 들었나· 니는 진짜 멍청도가· 니 귀는 포경이가·"라는 야유 섞인 조롱을 들어야 했다. 그 때만 해도 제대 말년의 고참이 '핏덩어리'에 불과한 졸병을 직접 구타하는 경우는 드물어 '쪼인트' 몇 대 걷어차이는 것으로 넘어 갈 수 있었다. 충청도를 폄훼하여 멍청도로 깍아 내리는 풍조에 나의 졸병 생활은 곱빼기로 힘들었다.

군대에서야 농을 잔뜩 섞어 충청도를 대하는 것이라 애교로 넘길 수도 있지만 작금에 벌어지는 '충청도=멍청도'라는 등식 만들기는 도저지 용서할 수가 없다. 세종시를 말하고자 함이다. 청와대, 총리, 정부, 한나라당 주류가 세종시 원안을 거부하고 수정추진 방침을 공론화 했다. 그들이 세종시 수정의 당위성으로 거론하는 명분은 원안대로 추진할 경우 자족성이 부족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종시로 이전키로 한 9부2처2청의 정부부처 가운데 일부 부처만 이전하는 대신 교육 과학 기업도시로 조성하거나 아예 백지화 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 하자는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본심을 숨기고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세종시가 그렇게 염려되면 자족성과 효율성이 충족되도록 원안에다 플러스 알파하면 될 일 아닌가. 그들은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면 수도권에 집중된 행정기능이 충청권으로 분산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수도권이 장악하고 있는 재화와 용역의 상당 부분이 충청권으로 이동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세종시에 반대하는 것이다. 정부 중앙부처의 업무는 다른 부처나 민간 기업이 수행할 수 없는 고유의 독점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중앙부처와 관련된 행정기관, 민간부문이 자연스럽게 중앙부처가 밀집된 세종시로 접근하게 된다. 정부부처를 대거 이전하는 방식의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려는 것도 정부부처 이전이 견인해 내는 효과가 그만큼 즉각적이고 크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들은 정부부처가 포함되는 세종시라는 매우 큰 파이를 충청권에 주기 싫은 것이다. 세종시 정도 되는 선물을 굳이 충청도에 주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세종시를 수정하거나 백지화 시켜도 잠시 귀찮게 하겠지만 금세 잠잠해질 멍청도라고 그들이 믿기 때문이다. 멍청이를 달래는 수법은 간단하다. "네가 가진 물건은 문제 있으니 내가 좋은 것으로 줄게"하면서 슬쩍 바꿔치기 하면 된다. 충청도 출신 정운찬 총리를 앞세워 자족성 부족이라며 바람 잡는 사이 행정중심도시를 교육이니 과학이니 하는 유사 상품으로 둔갑시키려는 수법이 '네다바이'와 무엇이 다른가.

멍청도가 되느냐 아니냐는 순전히 충청도민들에 달렸다. 뻔히 보는 앞에서 세종시를 네다바이 당하면 멍청도라는 표현은 차라리 점잖은 편이다. 기득권자들과 수도권이 정부부처 이전을 저토록 꺼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볼품없고 쓰잘데없는 게 정부부처라면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이 끌어안고 있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여야당이 합의하여 특별법으로 세종시를 정해 놓고 이제 와서 충청권으로 인해 전국이 손해를 보는 것처럼 호들갑 떠는 것은 네다바이꾼들의 억지 바람잡이로 들릴 뿐이다.

세종시 논란은 분권주의와 집권주의의 대결이며 법치(法治)와 인치(人治)의 갈등이다. 감히 세종시 논란을 정의 차원에서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정의는 자신들이 유리할 때만 인정하고 반대의 경우라면 그 개념조차 바꾸려 들 테니까.

삭풍이 부는 황야에 놓인 세종시. 세종시를 '네다바이' 당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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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