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 정정순의 전화위복

최종웅의 세상타령

2021.08.31 16:30:18

최종웅

소설가

한국병원 앞을 지날 때마다 눈에 띄는 게 있다. 국회의원 정정순 사무실이란 간판이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는 한국병원 건물을 압도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회계책임자의 고발로 구속된 후에는 한국병원의 위세에 눌려 판잣집처럼 초라해 보였다.

교통신호를 받고 서 있을 때마다 정정순을 사지로 몰고 있는 회계책임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충북도 산하기관에서 근무하다가 정정순을 돕기 위해 2018년에 퇴직했다고 하니 부지사를 할 때부터 알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정순이 민주당 공천을 받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수 있을 것이란 얘기가 돌았으니까.

그만큼 주민에게 잘했지만 중앙 정계에 인맥이 약해서 민주당 공천을 받을 가능성은 적게 본 것이다.

이런 시기에 정정순을 돕기 위해 공직을 사퇴했다는 것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각오였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니 보상을 바라는 것도 당연했을 것이다. 그것도 피를 말리는 승부 끝에 당선됐으니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당연히 1등 공신 대우를 받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멀쩡한 직장을 사직하고 나왔으니 그보다 좋은 자리를 욕심내는 것도 당연했다. 양복까지 맞추며 주변에 자랑했다는 소문도 있다.

학수고대하던 보좌관은 엉뚱한 사람이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하늘이 무너질 만큼 실망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운명을 함께할 각오였던 사람의 약점을 들고 검찰에 찾아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정정순을 죽이는 일은 쉽지만 자신도 함께 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이를 악물고 참으며 다음 기회를 엿봤을 것이다.

자신도 끝장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행한 것은 악연이고 운명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그 후에도 마음은 몇 번이고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우선 정정순 측에서 얼마나 살려 달라고 애원했겠는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을 것이다.

결국 두 사람 다 1심에서 의원직 상실 형을 선고받았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남아있었다.

벌금을 선고받은 회계책임자가 항소하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최소한 1, 2년은 버틸 수 있으니 임기 4년의 절반은 채울 수 있게 된다.

벌금을 대신 내줄 테니 항소만 해달라고 간청했을 수도 있다. 항소를 포기하면 당장 의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이 가까워올수록 지역 언론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회계책임자가 항소를 포기하더라도 검찰이 항소하면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다.

어떤 신문은 항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고 어떤 방송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했다. 자정을 넘기자 언론은 정정순이 의원직을 상실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유권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 특정인이 임기를 좌우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약점이 잡혔기 때문이다. 그것도 급소를 찔린 것이다. 집권당 의원이니 웬만하면 검찰도 움직일 수 있고 법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다.

백약이 무효였던 셈이다. 지역사회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개천에서 용이 난 것 같은 인재였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주고·청주대를 졸업하고 7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행정 부지사를 거쳐 국회의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측근에게 급소를 찔려 낙마했으니 인간성이 나쁘단 소리라도 들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착한 사람의 대명사라고 불릴 만큼 누구에나 지성으로 대했다. 그런 사람이 측근에게 급소를 찔려 낙마한 것은 원숭이가 나무 위에서 떨어진 것과 같은 것이다.

연민의 정이 드는 것은 몰래 카메라에 걸린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죄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걸리고 안 걸리고의 문제라서다.

악한 끝은 없어도 착한 끝은 있단 말이 있다. 착한 사람이라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은 한, 무엇을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전화위복이 되길 바란다.

문제는 선거구민의 피해는 누가 보상해 주느냐는 점이다. 아직도 동남지구에 버스터미널을 설치하겠다는 소리가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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