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라도 순해야 살게 아닌가

최종웅의 세상타령

2020.08.11 17:04:22

최종웅

소설가

최백수는 공포감을 느낀다. 하늘에서 비행기 소리 같은 괴성이 난다. 16층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 것 같다.

최백수는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바람 소리가 좀 잦아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망을 보는 기분으로 살며시 창가로 간다. 설상가상이다. 바람은 좀 약해진 것 같은데 비가 쏟아진다.

양동이로 퍼붓는 것 같다. 비행기 소리 같은 바람 소리가 사람을 질리게 한다면 양동이로 퍼붓는 것 같은 폭우는 숨이 막히게 한다.

최백수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하늘이라도 순해야 사람이 살게 아닌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정치를 00같이 하면…." 이라는 말이 앞에 들어가야 문맥이 맞는다. 그런데 표현이 너무 거칠다.

최백수는 말을 고친다. "세상이 험하면 하늘이라도 순해야 살게 아닌가."

무난하다. 최백수는 이 말을 중얼거리면서 TV를 켠다.

흙탕물이 화면을 집어삼킬 듯이 넘실거린다. 남북은 자연재해 앞에서도 대치 중이다. 북한은 황강 댐을 방류하면서 말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돈을 달랄 때는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수문을 열 때는 귀뜸조차 해주지 않는다.

북한도 쇠귀에 경 읽기지만 그런 북한에게 끊임없이 퍼주려는 정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최백수는 채널을 돌린다.

귀신 우는 것 같은 바람소리가 듣기 싫어서 TV를 켰는데 그보다 더 무서운 광경이 방영되기 때문이다.

최백수는 TV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일기예보는 미리 알고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장마가 언제 끝이 날는지도 알 수 없는 예보가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일기예보의 두 번째 목적은 정확한 강우량을 알려주는 것이다. 요즘 예보에는 정확한 강우량이 없다. 무조건 200~300mm라는 것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보았던 기사가 생각난다. 기상청 역대급 오보라는 제목이었다.

'520억짜리 슈퍼컴 쓰고서도 강수량 강수위치 모조리 빗나가, 올여름 역대급 폭염이라고 했지만 예년보다 2도나 낮고 열대야도 적어…'

도저히 못 참겠으니까 기상청이라도 잡자는 심리였을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하늘의 뜻을 알 수 있겠는가.

최백수는 신문을 뒤적이며 신나는 기사를 찾다가 가슴이 막혀오는 기분을 느낀다.

가렴주구(苛斂誅求)란 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어떻게 살지? 라는 말을 뱉는다.

아무리 국가라도 국민에게 그렇게 많은 세금을 물릴 수는 없다. 다주택자에게 보유세를 혹독하게 물리면 양도세라도 경감해 줘야 팔기라도 할게 아닌가.

최백수는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보다 세금을 뜯어가는 탐관오리가 더 무섭다는 옛말을 떠올리면서 세상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단칸셋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을 몇 푼씩 모아 전셋집으로 이사했고, 전셋집을 키워서 집을 샀다. 그렇게 고생해서 집을 샀는데 어째서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것이냐고 묻고 싶다.

최백수는 묻고 싶은 게 또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청주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기 전에 충북도에 의견을 물었다는 것이다.

충북도가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장기 미분양 관리지역인 청주가 느닷없이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해서 돈을 벌었다면 세금도 많이 내야 하겠지만 아파트값이 40% 이상 떨어졌는데도 투기꾼만큼 내야하니까 억울한 것이다.

늦게라도 이런 사정을 알았으면 청주시든 충북도든 즉각 해제를 건의해야 하는데 적극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시종 지사가 청주에 집이 있으면 그렇게 했을까? 만약 한범덕 시장이 청주에 집이 있다면 여태 해제건의를 하지 않았을까?

정정순 의원만이 국회에서 조정대상지역이 잘못 지정되었다고 따지면서 해제를 촉구했다는 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공인 중개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을까? 최백수는 퍼붓는 비를 보면서 장마보다 무서운 게 코로나고,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경제라는 생각을 한다.

한 가지만 와도 위기인데 한꺼번에 3가지가 몰려오니 재앙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중얼거린다.

"세상이 험하면 하늘이라도 순해야 살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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