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2019.03.28 14:53:42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한 여인이 아들을 앞에 두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울먹이는 어머니의 어깨를 두 손으로 살며시 감싼 아들도 그렁그렁한 눈물을 붉어진 콧잔등으로 삼키고 있다. 그 옆에는 다소 뻣뻣하게 서 있는 아들의 목을 한껏 껴안은 엄마가 활짝 웃고 있다. 하지만 눈가에는 이슬처럼 맑은 눈물이 맺혔다. 조금 떨어진 저쪽에는 깔끔한 제복차림의 딸과 아빠가 서로 떨어질 줄 모르고 연인처럼 껴안고 있다. 그 옆에서 엄마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내고 있고….

엉엉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지만 주변이 온통 눈물바람이다. 특이한 것은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매달리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엄마아빠인 어른들이고, 의젓한 자세로 어른들을 다독이는 건 아이들이다. 한 달간의 힘든 기본군사훈련을 마치고 정식으로 사관생도가 되는 입학식장에서 해마다 볼 수 있는 정경이다. 아이들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해내었기에 저렇게 감격의 눈물까지 흘릴까 싶지만 부모의 애틋한 마음은 자식들의 변화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감동이다. 첫돌 즈음 스스로 일어서서 뒤뚱뒤뚱 걷기 시작했을 땐 마치 지구를 들고 일어선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 어리광을 부리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훌쩍 달라져버린 모습이 낯설어서 더 눈물겹다.

태어난 후 가장 혹독하게 춥고, 배고프고, 힘든 겨울을 이겨내고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는 아들·딸들을 보면서, 부모가 흘리는 눈물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정성들여 키워온 보람일 수도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 남모르게 쌓여온 한(恨)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이가 이제 내 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서운함인지도 모른다. 말로는 다 풀어내지 못할 사연들을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과 두 손으로 가려야 할 만큼 쏟아지는 눈물, 눈가에 이슬처럼 반짝이는 눈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눈물은 감성의 바다가 출렁이고 철썩이며 넘쳐흐르는 물방울이다. 격랑을 품은 바다의 말없는 표현이다. 어떠한 사연으로 인해 조용하던 바다가 출렁이게 되었는지에 따라 눈물은 그 성분까지도 달라진다고 한다. 가슴을 쥐어짜는 슬픔으로 흘리는 눈물과 넘쳐나는 기쁨이나 감동에 의해 흘리는 눈물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떠한 성격의 눈물이건 한껏 쏟아내고 나면 바다는 잔잔해진다. 한바탕 비바람이나 태풍이 몰아치고 나면 적막한 평화로움이 찾아오듯 바다는 한층 순해진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눈물은 생리적 현상을 넘어 쩍쩍 갈라진 땅에 내리는 한 줄기 소나기와 같다. 들끓고 있는 콩물을 금세 잠재우는 한 바가지 간수 같은 존재다. 또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길이기도 하다.

나의 바다는 깊이가 얕아서 쉽게 출렁이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출렁임을 쉽게 밖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였다. 속으로는 번개가 치더라도 그냥 삼키고 억누르며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살아왔다. 눈가가 붉어지면서 눈물이 핑 돌 때엔 얼른 고개를 돌리거나 자리를 피하곤 했다. 마치 카드게임에서 내가 들고 있는 카드를 남이 보지 못하게 숨기듯, 혹은 푸른 제복 속의 군인정신이 무너질까 경계하듯 내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가을이 되면 높아진 하늘만큼 바다는 한층 투명해져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군복을 벗고 젊지 않은 나이가 되면서 눈물을 드러내는 일이 많아졌다. 별것 아닌 일에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울컥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처음으로 목 놓아 실컷 울어보았다. 내 속을 숨기기보다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런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가슴 후련한 일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제 막 군인의 길을 들어 선 아이들이 애써 눈물을 삼키며 서 있는 모습에서 꼭 나의 옛날을 보는 것 같다. 깊은 바다나 넓은 호수의 물이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출렁임을 통한 위아래의 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명경처럼 잔잔한 바다는 배가 다니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결코 건강한 바다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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