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표정

2015.03.04 13:46:39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어느 초여름 날이었다. 베테랑 조종사가 이끄는 전투기 두 대가 잔뜩 찌푸린 구름을 뚫고 무사히 활주로에 착륙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아뿔싸! 착륙 후 주기장에 들어온 비행기의 모습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비행기 겉 표면의 페인트가 흉측할 모습으로 벗겨지고 동체의 약한 부분은 부서지거나 움푹 패었다. 장착하고 있던 미사일도 앞부분이 크게 손상되었다. 원인은 구름 속에 숨겨져 있던 우박. 우박은 작은 얼음알갱이에 불과하지만 빠른 속도로 날아든 비행기에겐 몽둥이찜질이나 다름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고속으로 회전하는 제트엔진이 약간의 손상만 입었을 뿐 꺼지지 않고 버티어 주었다는 것은 천운이었다.

하늘의 표정을 잘못 읽은 탓이었다. 초여름 하늘에 좀 진한 구름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등 뒤에 무기가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지상관제소나 기상대에서도 레이더를 통해 웬만한 우박이나 뇌우는 감지해 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감쪽같이 속았을까· 요즘 세상의 인심이 하도 속고 속이다보니 하늘의 표정도 그렇게 닮아가는 것인가 싶었다.

하늘은 구름으로 표정을 나타낸다. 뭔가 뒤틀린 심사는 이처럼 엉큼한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때론 멀쩡하던 하늘이 돌변하여 폭우를 쏟아 내기도 한다. 반면에 봄볕이 내리쬐는 날, 드문드문 떠 있는 흰 구름은 미소 띤 어머니의 표정이고, 높고 푸른 가을하늘의 새털구름은 근엄한 아버지 표정 같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하늘은 성깔 있는 시어머니 표정이요, 손바닥 뒤집듯 변덕스런 여름하늘은 까칠한 시누이 표정이다. 봄날 보슬보슬 이슬비가 내리는 하늘은 달콤한 연인들의 표정이랄까.

사람들은 늘 하늘의 표정을 살피며 살아왔다. 그 결과, 숨겨진 속내는 물론 며칠 앞의 표정까지도 어느 정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눈치가 늘었다.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하면 비가 오고, 눈이 온다고 하면 비슷한 시간에 눈발이 날린다. 내일 아침에는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한다느니, 빨래는 어떻게 하고, 바깥나들이를 삼가라느니 하는 잔소리에 가까운 일기예보도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디까지나 예상에 불과한 날씨정보를 과신하는 부작용과 하늘의 표정을 가볍게 보는 교만함이 생기기도 했다. 날씨를 미리 점치는 것쯤은 더 이상 천기(天機)로 받아들이지 않는 세태이다. 그러나 문제는 하늘의 변화가 급하고 난폭해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기록을 넘어서는 이변이 지구상의 구석구석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이 매우 가까운 곳에 잠재하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자연의 이변에 대항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란 기껏해야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는 것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몇 년 전 추석을 앞둔 초가을,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를 덮칠 것이란 예보가 발표되었다. 마침 태풍의 예상 진로에 있었던 우리부대는 비상이 걸렸다. 연휴를 모두 포기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작업에 매달렸다. 강풍에 날아갈 만한 것들은 모두 밧줄로 꽁꽁 묶거나 아예 땅에 내려놓았고, 폭우에 대비한 물길 만들기에 온종일 고단한 일을 해야 했다. 사람들은 불평을 해댔다. 태풍이 옆으로 비껴갈 수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실제로 태풍은 육지에 상륙하면서 약해지기 시작했고, 부대를 비껴가면서 피해는 아주 미미했다. 사람들은 이럴 줄 알았다며 날아가 버린 휴일만 아까워했다.

그러나 그때 태풍을 약화시키고 옆으로 비껴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대원 전체가 온힘을 다한 그 에너지가 태풍의 진로마저도 바꾼 것이라 믿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삶의 어려운 고비는 -그것이 불가항력에 가깝다 해도- 혼신의 힘을 다하면 의외로 쉽게 풀렸었다. 머리를 싸매고 공부한 시험문제는 늘 쉽게 출제되었었다. 결국, 자연의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방책이 아주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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