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배운다

2016.01.12 14:19:45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요즘처럼 산을 오르는 사람이 많을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왜 산을 오르느냐?'고 묻는 것은 '왜 음악이 좋으냐?'고 묻는 것처럼 어리석은 질문이 되었다. 나도 산을 좋아한다. 전날 밤 등산 배낭에 짐을 챙겨 넣을 때부터 가슴이 뛴다. 그리고 정상에 올랐을 때 저 멀리까지 바라보며 속이 탁 틔는 상쾌함과, 땀이 살짝 식으면서 느껴지는 비릿함은 살아있음을 일깨워준다.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산을 오르다 죽음의 고비를 경험하면서 오히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다는 그들을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2년 전 히말라야 고갯마루에서 안나푸르나 남봉(7천219m), 히운출리(6천441m) 마차푸차레(6천997m) 산이 눈앞에 확 다가왔을 때, 그곳 사람들이 산을 신으로 받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곳의 산은 스스로 높이 솟아 검푸른 하늘을 찌르고,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며 흰 눈을 연기처럼 하늘에 날리고 있었다. 산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앞에 나를 엎드리게 했다. 잘난 척, 있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네팔사람들은 겸손하고 순박한지도 모른다. 걷기도 어려운 산비탈에 손바닥만 한 평평한 땅을 내어 준 것에 감지덕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에는 인구 20만명이나 되는 큰 도시지만 교통신호등이 없다. 수많은 차와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지만 큰 불편함 없이 잘도 다닌다. 무질서가 질서인 셈이다. 산은 그들에게 진정한 질서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연말에 중국의 황산에 올랐다. 일 년 중 250일을 운해에 잠겨있다는 황산. 우리가 간 날도 역시 구름에 덮여 몇 발짝 앞에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 하루 종일 수천, 수만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구름 속을 더듬고 다녔다. 천하의 절경이 있다는 곳도 수많은 사람들의 손과 발이 닿은 흔적만 있을 뿐이었다. 수백 미터 낭떠러지에 걸린 잔도나 깎아지른 경사면을 좁은 계단으로 오르내리면서도 아슬아슬한 느낌이 없었다. 산을 보러 갔다가 사람들이 만든 돌계단과 이정표만 구경하고 하산하였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같이 간 사람들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록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했지만 산은 그 느낌만으로도 충분했다. 산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었다.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우리나라의 산은 여인의 치마를 펼쳐 놓은 것 같다. 높은 산은 깊은 주름을 만들면서 넓게 펼쳐져 있고, 낮은 산들은 큰 산 옆에서 작은 자락을 펼치고 있다. 치마의 주름들이 촘촘하게 모이는 곳에 치맛단이 있듯 산은 그곳에 정상을 두고 있다. 펼쳐진 치마의 크고 작은 주름들 속에는 인간들의 살고 있다. 사람은 산이나 여인의 치마폭에 안겨있을 때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 산은 우리 삶의 어머니와 다름없다.

새해 들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활짝 웃으며 듣기 좋은 덕담을 나누지만 속마음은 그리 편한 것 같지 않다. 내일에 대한 불안감으로 젊은이와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들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고 한다. 각종 언론매체들은 온갖 자료들을 인용해서 삶이 더 팍팍해질 것이라고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걱정을 하지 않고 산 적이 있었던가?

어렸을 적 우리나라는 농사지을 수 있는 평야보다 산이 훨씬 많아서 불운한 나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 높고 낮은 산이 많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영화 "히말라야"에서 산사나이들이 말했듯 산은 정복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에 오르는 이유는 가슴속에 산 하나를 들여놓기 위해서다. 산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산을 오르기 전에 느끼는 긴장감과 정상에 대한 기대감이 삶의 에너지임을 알고 있다. 산을 오르며 새로운 활기와 용기를 되찾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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