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

2016.08.04 15:05:26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오랜만에 다른 사람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임무가 아니라 여행을 가는 비행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나의 오감은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유도로를 거쳐 활주로에 진입하고, 엔진추력을 높이며 이륙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었다. 고도를 상승하면서 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하늘과 땅의 모습도 예전과 다름없다. 문득 길게 뻗은 날개가 눈에 띄었다. 전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400여 명의 여행객과 수십 톤에 달하는 짐, 그리고 엄청난 연료를 실은 비행기를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고 생각하니 위대한 날개임이 틀림없다. 내가 조종사임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레 양력(揚力)이란 마법 같은 힘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비행은 조종을 하건 그냥 객석에 앉아서 가건 어렵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좁은 공간에 갇혀 무지근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비행기에 올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이리저리 뒤척이기 시작한다. 앞좌석 뒷면에 붙어 있는 작은 화면을 통해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 간간히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개인 컴퓨터로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가장 속 편한 사람은 승무원에게 와인을 한 잔 받아 마시고 꿈나라를 떠도는 사람일 것 같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승무원이 네모진 탑차를 끌고 와서 둘 중 한 가지를 택하라고 말한다. "치킨 or 램?" 구체적 설명도 없이 무작정 선택을 강요한다. 모두들 나란히 앉아 손바닥만 한 간이 테이블에 기내식을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먹는 모습이 엉뚱한 상상을 자아낸다. 우리에 갇힌 것처럼 꼼짝할 수 없이 먹고 자고 시간이나 보내라는 주인나리(?)의 배려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

비행기가 난기류에 흔들린다. 통로나 화장실 앞에 서성이던 사람들에게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란다. 기체를 흔드는 난기류는 위험한 이리떼이고 목적지까지 옮겨가야 하는 승객은 비행기 기장의 어린 양이다. 혹시 다칠까봐 배려해 주는 걱정이 반갑고 고마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서성이던 사람들은 마지못해 움직인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싫은가 보다.

여남은 시간이나 되는 긴 비행시간을 버티는 군상들의 모습이 다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비행기에 오른 사연도 그들의 옷차림만큼이나 다양하고, 가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도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도 힘든 시간을 참아내려는 준비와 방법이 삶의 모습 그대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앞쪽의 넓고 편안한 좌석에서 고급 서비스를 받으며 가고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뒷부분 좁은 좌석에서 복작거리며 가고 있다. 다소 부지런하거나 약삭빠른 사람은 일반석 중에서도 발 뻗기가 용이한 비상통로 쪽 좌석이나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가 쪽을 배정받아 앉는다. 이도저도 아닌 사람은 중간에 끼인 불편한 좌석에 배정되어, 화장실을 한 번 가려해도 옆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비행기 표를 어떻게 구입하느냐에 따라 지불해야하는 돈의 차이도 크단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같은 비행기를 타고서도 많은 차이가 난다.

이윽고 비행기가 활주로에 사뿐하게 닿았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다소 색다른 문화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박수의 의미가 궁금했다. 안전하고 가뿐하게 착륙한 조종사에게 보내는 갈채일 수도 있고, 비행기 안의 지겨움을 털어내려는 환호일 수도 있겠다. 비행기가 주기장에 정지하자마자 사람들이 우루루 통로로 나섰다. 어차피 앞좌석부터 차례대로 나가야 하는데도 잠깐의 시간을 못 참겠다는 듯 서둘러 비행기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게들 꿈꾸던 여행이고 기다려온 비행이지만, 막상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힘든 시간임을 사람들은 몸으로 느낀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비행을 꿈꾸게 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특권인가, 아이러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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