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로록~ 또로록~ 빠밤~ 빠밤. 우산 속 빗방울이 강렬한 리듬과 선율을 그린다. 봄비가 가루비가 되어 포슬포슬 내려 여울진다. 봄의 향기를 안고 걷는 산책길이 삶의 비타민이 되어 지친 마음을 응원한다.
산책을 마치고 레코드 한 장을 꺼낸다.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이다. 1악장을 끝내고 2악장이 흐른다. 주제 '라르고, Going Home(고잉 홈)'이 여고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196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본다. 여고 시절은 아름다운 꿈을 만들어 줬다. 친구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작은 집 창문으로 음악이 흐르며, 친구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피아노로 Going Home을 연주하고 계셨다. 음악 시간에 배운 곡이었다. 간단한 피아노 곡이 할아버지의 모습과 어울려 서정적으로 흘렀다.
고희를 넘은 황혼기가 되어 그 시절을 곱씹어 본다. 1970년대 초반부터 나는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 교사가 돼, 한 평생 학교와 음악학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음악 속에 살며, 음악의 길을 가는 직업은 나의 꿈이었다고 말하련다.
지금의 내 나이쯤 돼 보였던 할아버지는 나에게 음악의 싹을 틔워 주셨다. 어느 날 할아버지 댁 주변을 갔다가 추억을 안고 돌아보았다. 창문은 그대로이며 음식점이 돼 자리하고 있었다. 여고 시절 보았던 커다란 창문이 황혼기가 된 내 눈에는 작은 창문으로 다가왔다. 물론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안타깝게 창문은 닫혀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레코드에 흐르는 신세계 교향곡을 들으며, 안톤 드보르자크를 만난다. 후기 낭만파 드보르자크는 체코 프라하 북쪽 넬라호제베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비올라 주자로 활약했고, 유럽과 미국에서 지휘와 작곡 등의 활발한 음악 활동을 했다. 작품으로 미 대륙의 개척정신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신세계 교향곡'이 유명하다.
그는 체코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보헤미아 브람스'로 불리며 명성을 떨쳤다. 드보르자크가 쉰 살이 되었을 무렵, 그는 체코 프라하 음악원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미국에서 온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미국 국립음악원 원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었다. 체코 프라하 음악원에 있던 그는 뉴욕 음악원의 급료가 30배나 더 높은 파격적인 조건에 미국행을 택했다.
뉴욕 필하모니가 초연한 9번 '신세계에서'는 미국 음악계를 뒤흔드는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그는 이 곡을 일컬어 '뼛속까지 체코적인 곡'이라고 표현했다. 결국 드보르자크는 체코 음악, 조국 사랑 향수병에 시달려 2년 만에 체코 프라하로 돌아왔다. 그래서인지 이 곡의 중간에 체코 서부지역에서 생겨난 춤곡인 '폴카'풍의 악상이 첼로와 바순의 연주로 체코를 그려준다.
드보르자크는 체코 프라하로 돌아와 '신세계 교향곡(신세계에서)'을 조국의 무대에 올렸다. 체코인 수천 명의 청중은 연주가 끝나자 일제히 기립해 환호하며 대작곡가 드보르자크를 영웅으로 대우했다. 그러나 뇌출혈이 악화된 그는 조국으로 돌아온 지 한 달 후, 62세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신세계 교향곡은 백인이 만든 신세계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주인이었던 인디언과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그들의 이야기다. 비참하게 생활한 흑인의 애환이 담긴 곡이다. 특히 2악장 Going Home은 그들이 고향을 그리는 선율로 '라르고' 라는 제목으로 고등학교 음악책에 나와 있다.
Going Home은 미국 시절 드보르자크의 제자 윌리엄 피셔가 '라르고' 악장에 시를 쓰고 노래로 만들었다. Going Home, Going Home, I'm just going home, Quiet - like some still day, I'm just going home….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옛 터전 그대로/향기도 높다/ 지금은 사라진/ 동무들 모여(중략)'로 번역돼 불리고 있다.
2악장을 듣고 있노라면 여기저기서 새들이 노래하고 체코 프라하에 흐르는 도나우강 물결이 춤추며 일렁인다고 표현하리라. 드보르자크는 "미국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교향곡을 쓸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곡은 미국 정신을 넣었을 뿐이지 체코적인 음악이라고 감히 정리해 보련다.
어린이들은 모두 예술가로 태어난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을 보라. 잠시도 쉬지 않고 예술을 하고 있다. TV를 보며 춤을 추고 손가락을 움직이며 음악을 만든다. 춤추다 넘어지고 손가락으로 피아노 치는 모습을 흉내 내며 스토리텔링을 한다. 이들에게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하도록 응원하는 것이 성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자. 성인 세대들이 떠올리지 못한 많은 장르의 음악으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지 않은가. 깊은 예술가들이라고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바쁜 일정 속에 잠깐의 여백을 찾아보자. 그리고 생활 속에 음악을 심어보기를 권한다. 음악을 연주하고 관람하는 동안 신체적인 감각 오감이 출동 하며 음악의 맛을 특별하게 느끼리라. 요즈음 나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라디오에 나오는 음악을 듣다 보면 기대감과 설렘이 차오른다. 하물며 누구든지 공연장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 관람할 때는 더욱 오감이 작동하지 않을까. 청각, 시각, 촉각, 후각, 나아가서는 음악의 미각까지도 느낄 터이다. 이보다 더한 삶의 치유가 있을까.그 옛날 나에게 음악을 심어준 그 분을 다시 떠올려본다. 황혼기가 된 지금까지도 Going Home을 피아노로 연주하시며 행복하시던 할아버지를 잊을 수 없다. 나에게 음악의 씨앗을 심어준 '라르고' Going Home을 피아노로 연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