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먹먹하다. 건강을 위해 동네 길을 뚜벅뚜벅 산책한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두 분이 천천히 걷고 계신다. 어디선가 피아노 음악이 귀를 열고 있다. 한 송이 꽃을 피우듯 청정한 음악이 되어 흐른다. 귀담아 멜로디를 새겨 보니 베토벤'월광 소나타' 2악장이 들린다. 소싯적 음악을 하신 분인가 보다. 두 분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음악에 심취하신 모습이 특별하다.
베토벤 '월광 소나타'는 대부분 1악장부터 듣는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로 느리게 시작하여 멜로디가 흐르면, 호수에 비친 달빛을 연상하게 된다. 조금 빠르게 알레그로의 연주로 들리는 2악장은 편안하고 순수한 무언의 꽃이 피어날 것 같은 판타지로 다가온다. 두 노인의 뒤를 따르며 그들을 본다. 노년기에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 모습이 고아하게 보인다. 2악장의 가락이 황혼 길을 가는 어르신을 안내하는 듯 흐른다. '길을 알면 앞서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히 앞서가며 음악으로 소통하는 노인들의 모습이 선지식으로 다가온다. 동병상련이랄까, 나 자신도 황혼기인데, 산책길에 덤을 받은 기분이다.
이어 3악장이 프레스토 아지다토로 나온다. 결정적으로 몰아치듯 빠르게 진행된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많은 감명을 받았다는 3악장의 그 부분이다. 음악학원을 경영하면서 대학 입시 곡으로 많이 접한 곡이다. 예비 피아니스트들은 심화 과정을 거쳐 표현하며, 빠르게 생동감 있게 연주한다. FM에서 나오는 월광곡을 듣던 할아버지가 역시 불후의 명곡이라고 말씀하시며 산책하신다.
250여 년 전 이야기를 펼쳐 본다. 독일 본에서 천재 루드비히 판 베토벤이 태어나며 그의 이름이 온 세계에 높아질 때였다. 베토벤은 초대를 받은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고, 달빛을 온몸에 받으며 걸었다. 고요히 초저녁 잠에 취해 있는 작은 오솔길 숲을 지나고 있었다. 베토벤의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자연의 멜로디가 솟아 넘쳤다. 그에게는 바람 소리까지도 음악이었다. 그때 어두컴컴한 나무그늘 옆으로 오막살이가 보였다. 그 집 안으로부터 자신이 작곡한 'F조 소나타' 가 들려왔다.
둥근 달이 둥실 떠올랐다. 베토벤 귓가에 작은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렸다. 그는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베토벤은 자아를 잊은 채 그 집으로 들어갔다. 금발의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깜박이는 작은 촛불이 정적을 깨뜨릴 뿐, 낡은 피아노 위에는 악보는 물론이고 종잇조각도 없었다. 장님이었다. 그 소녀는 어느 백작 부인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연주한다고 하였다. 가엾고도 놀라웠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가엾은 소녀를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조금 전 소녀가 치던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당신은 베토벤 선생님 아니십니까?" 물었고, 베토벤은 소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맞소, 내가 베토벤이오"라고 답하였단다. 옆에서 구두 수선을 하고 있던 오빠가 어린 소녀를 위해 한 곡조를 더 연주해 주기를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들창 너머로 달빛이 고요하게 들어왔다. 그는 소녀를 위해 자기 심중에 끓어오르는 감흥을 천천히 연주하기 시작했다. 멀리 달나라를 소요하듯 흐르다가 그의 손은 불꽃 튀듯 건반 위에서 뛰어놀며 가락을 만들었다. 베토벤이 집으로 돌아와 즉흥적으로 연주한 곡을 악보로 옮기니, 이것이 불후의 명곡인 '월광 소나타'였다.
천재 작곡가인 베토벤은 기막힌 운명으로 청력을 잃었다. 귀머거리가 된 후에도 '운명', '전원', '합창' 등 9개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수많은 피아노곡, 실내악곡, 성악곡, 기악곡을 작곡했다. 그는 영원불멸의 작곡가였다.
58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베토벤을 떠올리며 '월광 소나타'를 듣는다. 그는 두 남매의 가슴속에, 천지가 감동하는 연주로 기쁨을 주었으리라. 또한 그가 청력을 잃어 피아노에 귀를 대고 작곡했으리라는 생각에 애잔한 마음마저 든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선율을 마음속에 채워본다. 환한 빛이 어두운 마음을 밝게 비추듯, 피아노 소리가 깊은 사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며 꿈을 준다. 그러나 달을 보며 마음이 슬퍼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대부분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지배한다. 베토벤 역시 가련한 장님 소녀와 작은 촛불, 들창으로 비치는 달빛의 감정이 월광곡을 탄생시켰으리라.
요즈음 지나가는 젊은이들에게 즐기는 음악을 묻는다면 무엇이라 답할까. 휴대폰 유튜브에 담긴 대중음악이나 팝 음악을 듣는다고 답하지 않을까. 이제는 음악이 실용음악이라는 말로 바뀌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음악이 한순간에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한다는 부질없는 판단이다. 힘든 고난의 길에 작곡된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뇌가 공감해 주며 지혜로운 삶의 길을 깨닫게 되리라. 그들에게 삶을 음악으로 반추해 보라고 알려주련다. 어둠의 실체가 섬광처럼 빛나며, 꿈의 길에 다다른다는 생각이다.
산책하며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와 대화를 한다. 맑은 소리가 삶을 영위하듯 얽히는 맛에 꽂힌다. 음악 자체가 '베토벤답다'고 표현해 보련다. 보잘것없다고 표현하는 가벼운 곡 소품이라는 뜻을 지닌 바가텔을 음미해본다. 작품번호 없는 바가텔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의 고독함보다는 송골송골 피어나는 귀여운 사랑이 느껴지는 곡이다. 이처럼 그의 소품곡은 피아노를 배우는 수강생들이 즐겨 연주한다.
나 홀로 산책을 마치고 가볍게 집으로 돌아온다. 뇌종양으로 아픈 머리도 마음속에서 비슬비슬 사라진다. 베토벤 소나타 14번 '월광'을 LP판으로 다시 들어본다. 달빛 숲속 선율이 묵묵하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