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입춘이 봄을 알린다. TV 광고 음악으로 비발디 협주곡 '사계'중 '봄'의 주제가 운무하며 흐른다. 향기가 솔솔 나며 봄의 설렘으로 다가온다. '사계'는 안토니오 비발디가 작곡했다.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짧은 시(소네트)와 함께 아름다운 소리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안겨줬다. 이 소네트는 계절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다. 사계절의 줄거리를 현악으로 담았다. 듣고 있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기분이 감돌며, 삶의 의미가 더해간다.
이 곡을 들으며 내 삶을 곱씹어본다. 봄은 자식을 낳았을 때이다. 엄마가 되어 아가의 맑은 눈빛, 꼬물거리는 손가락, 발가락과 눈 문안을 했을 때이리라. 여름은 학교 선생님을 깊은 생각 없이 퇴직하고 음악학원을 경영했을 때이다. 수많은 폭풍우가 밀려와 잊지 못할 일들이 많았다. 어찌 설명하랴. 돌아보면 어려움을 이겨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가장 성숙한 삶을 가을이라고 품어본다. 엄마의 의무를 다하고, 내 생활 속에 음악을 심어 열매를 맺은 자랑스러움이다. 정말이지 곱고 찬란하다. 어찌 그뿐이랴. 수많은 제자가 음악회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접할 때의 행복감을 글로 형용할 수 없으리라.
내 삶의 겨울은 포근하다고 말하련다. 음악이 글 속에 흐르며 따스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한다. 지금도 제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세월을 가고 있다. 황혼의 겨울을 사박걸음으로 걷고 있지 않은가.
내 삶의 겨울은 포근하다고 말하련다. 음악이 글 속에 흐르며 따스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한다. 지금도 제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세월을 가고 있다. 황혼의 겨울을 사박걸음으로 걷고 있지 않은가.
사계절이 담긴 선율 속으로 들어가 본다. 먼저, 학원에서 수강생들이 수업하는 피아노책에 실려 있는 '봄'을 소개하며 톺아본다. 겨울에 꽁꽁 얼었던 얼음이 녹아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세월이 맑은 시냇물이 되어 졸졸 흐르며 봄을 노래한다. 봄의 소리는 고음으로 발랄한 당김음(싱코페이션)으로 들린다. 바이올린 소리가 새들의 즐거운 노래 속에 서려있다. 하얀 목련 같은 웃음소리도 들린다. 개나리가 귀여운 병아리를 부른다. 봄노래를 부르며.
'여름'을 꺼내 본다. 신비한 자연과의 교감이 들린다. 장마와 태풍, 천둥소리가 생생하다. 거친 바람과 넓은 바다 파도는 내 심장을 파헤치듯 뒤흔들며 살아있다. 찌를 듯 내리쬐는 태양, 뜨겁게 타오르는 강렬한 더위가 미학적 선율로 감정을 울린다. 그러나 담을 타고 있는 빨간 장미가 햇살을 오물오물 먹고 있는 표현의 가락을 찾을 수 있다. 비발디가 발표한 여름 소네트가 가락의 감흥을 더해주고 있지 않은가.
'가을' 속으로 들어간다. 비발디의 가을 소네트는 농부들의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나눔으로 번역된다. 하늘이 높고 청명함이 현악 스트링으로 나온다. 단풍이 곱게 들고 도닥도닥 맺힌 나무의 열매, 누렇게 익은 낙엽의 계절이 아닌가. 가을 여인이 치맛자락을 길게 드리움이 첼로와 베이스 소리에 담겨있다. 사색의 심연, 가을이 스산하게 들리기도 한다. 황홀한 가을빛을 현의 소리로 노래했을 터이다.
'겨울' 협주곡은 추위 때문에 이가 부딪히는 탁탁탁 소리로 시작한다. 이어 불타는 모닥불 앞에서 휴식을 취하는 편안한 음악이 흐른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나뭇가지에서 눈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겨울 햇살의 고조곤한 속삭임 속에 맑고 고운 꽃송이를 화음으로 피워 놓는다. 이어 다시 폭풍우가 몰아치며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이 겨울의 그림으로 비발디의 협주곡은 막을 내린다.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작곡가인 안토니오 비발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성당 신부였던 그는 천식과 협심증이 심해 미사를 집전하지 못했다. 따라서 다른 직분을 받아 사십 년 동안 피에타 보육원의 음악교사로 바이올린과 성악 작곡 등을 가르쳤다. 비발디는 자신의 곡에 다양한 제목을 붙였다. '사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외에도 '홍방울새', '사랑에 빠진 자' 등 제목을 기발하게 붙여 상상하며 음악을 듣게 했다. 구체적인 묘사로 음악을 표현했다고 하리라. 그래서 그를 표제음악의 선구자로 부르기도 한다. 또한,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 등에게도 많은 음악적 영향을 준 음악가다.
비발디의 작품으로 협주곡, 성악곡, 실내악곡, 관현악곡 등 수백 곡이 있다. 특히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유명세를 받는 즐거움이 샘솟는 곡이다. 그의 음악은 쉽게 작곡돼 듣는 이가 기분이 좋아진다고 표현하련다. 사계의 특징으로는 계절마다 같은 주제를 재현한다. 지나간 멜로디를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이 쉽게 다가온다.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라고 했다. 아름다움은 음악의 생활 속에 있다고 반추해본다. 나는 복잡하고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는 음악을 듣고 악기로 연주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이 세상 삶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축복으로 더없이 느껴진다.
비발디의 '사계'는 무심히 피고 지는 꽃처럼 노래한다, 주선율이 계절 따라 변화된 화음으로 펼쳐놓는다, '비발디의 사계절이 삶을 아르페지오(중복된 화음을 펼쳐 위 또는 아래로 빠르게 연주하는 주법)로 노래하다'라고 표현하련다. 사계절 중 '봄'을 다시 들어본다. 주제 속 당김 음이 사풋 가슴 속 봄 향기로 날아와 봄맞이한다. 봄, 봄이 왔다고.